베이징(北京) 1차 회담의 결과와 6자 회담 계속 전망에 대해서는 당사국마다 다양한 관점이 존재한다. 이 중에는 회의적인 목소리도 있다. 주로 북한과 미국이 내세우는 적대적이고 외형적인 대결 논리 때문이다.
북한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은 9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특사인 콘스탄틴 풀리코프스키에게 “미국이 북한에 일방적인 양보만 요구했기 때문에 1차 회담은 절망적이었다”고 말했다. 북한은 또 베이징 1차 회담이 끝난 후 미국의 이해는 자신들의 이해와 일치하지 않으며 핵 억지력을 강화해나가겠다고 발표했다. 10월 평양은 핵연료 재처리 사실을 확인했으며 핵실험의 강행 가능성까지 밝혔다.
미국은 이에 맞서 9월 11개 동맹국과 함께 오스트레일리아 연안에서 북한을 염두에 두고 핵물질을 싣고 가는 선박을 나포하는 연습을 했다. 이는 북한의 극단적인 반발을 낳았지만, 백악관은 군사행동 결정 등 모든 것이 선택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반복해서 강조했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은 심리전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미국과 북한은 적대적인 수사(修辭)와 행동으로 상대를 압박하려는 것이다. 내부적으로는 이미 타협 방안을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도 이러한 수사는 복잡한 정치적 게임에서 자신의 입장을 강화시킴으로써 협상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기 위한 것이다. 자신을 고립시키려는 움직임에 대항하려다 보니 북한의 수사는 자연히 거칠고 위협적일 수밖에 없다.
전문가들은 북한의 특이한 전술을 감안할 때 몇몇 대외적인 행태만으로 섣불리 결론을 내려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북한은 최고조의 강경 발언을 하다가도 그 직후에는 반드시 ‘마지막 다리(최후의 퇴로)는 불태우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던지는 듯한 태도를 보여 왔다는 것이다. 북한 정권수립 55주년(9월 9일)에 예상과 달리 군사력 과시를 억제하고 새로 개발한 미사일을 공개하지 않았던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미국의 태도도 누그러졌다. 부시 대통령은 무력으로 점령한 이라크에서의 상황이 미국의 의도와는 전혀 다르게 돌아가고 있는 지금 한반도 문제를 무력 충돌로까지 가도록 할 생각은 없는 것 같다. 대통령 선거를 1년 앞둔 지금 오히려 북핵 문제의 외교적 해결은 대통령 선거의 중요한 카드가 되고 있다.
1차 6자회담의 러시아측 수석 대표였던 알렉산드르 로슈코프 외무차관은 미국이 몇 가지 점에서 깊이 있고 건설적인 자세를 견지하고 있다고 파악했다. 미국은 아마도 그동안의 경험에서 ‘비이성적이고 예측하기 어려운’ 북한의 심리와 세계관을 보다 잘 이해하게 됐고 북한의 공격이나 독설에 일일이 대응하지 않게 됐다는 것이다.
부시 대통령은 최근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와의 회담에 이어 APEC 회의에서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 그리고 노무현(盧武鉉)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고 북한에 대한 다자간 안전보장 방안을 언급했다.
북한의 핵 프로그램 포기와 북한에 대한 안전보장을 교환하자는 방안이다. 물론 세부적인 조건은 앞으로 치열한 흥정의 대상이 될 것이다. 북한이 ‘신경질적 반응’을 자제할 것이라는 점은 의심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이제 대화의 수준은 단순한 타협이 아니라 얼마나 자신들의 이해를 극대화해 협상에 반영할 것인가로 옮겨갔다.
6자회담의 장점은 4개 중재국이 상시적으로 상황을 지켜보며 미국과 북한의 충돌을 완화시킬 뿐 아니라 양측의 합의를 보장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제는 모든 당사국이 ‘기회’를 놓치지 말고 ‘조용한 외교적 대화’를 통해 2차 회담이 내용 있는 대화가 되도록 적극적으로 준비해야 할 때다.
알렉산드르 보론초프 러시아 동방학연구소 한국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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