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 계좌 추적의 배경과 의미=불법 정치자금 수사가 야당을 죽이기 위한 ‘기획수사’라는 한나라당 최병렬 대표의 공세에 대해 송광수 검찰총장이 이날 “전투 장면 하나를 보고 전쟁 전체를 평가하지 말라”고 일축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검찰이 민주당의 공식 계좌와 비공식 차명계좌 10여개에 대해 먼저 추적에 착수한 것은 경위에 어찌됐든 노무현 대통령의 대선 자금을 정면으로 겨냥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적지 않다.
민주당 계좌에 대한 추적은 먼저 기업을 조사하지 않고 당 계좌를 통해 입금된 자금의 규모와 출처를 가려내겠다는 것이다.
검찰은 그 동안 정당 계좌 추적 ‘카드’는 정당을 불법 범죄 집단으로 간주할 수 있고 정치 활동의 자유를 제약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 ‘제한된 범위 안에서 추적하겠다’며 조심스러운 입장이었다. 그러나 민주당 계좌 추적을 통한 불법 대선자금 추적에 들어간 이상 조만간 한나라당 계좌도 손을 댈 것이 뻔하다. 검찰도 이를 부인하지 않고 있다.
민주당 금융계좌에 대한 수사는 빠르게 진행될 전망이다. 검찰은 이미 지난해 대선 당시 민주당 선거대책위원회 총무본부장을 지낸 열린우리당 이상수(李相洙) 의원을 조사하면서 출처를 알 수 없는 뭉칫돈이 당 공식 후원 계좌가 아닌 차명계좌를 통해 입금된 사실을 밝혀냈다.
이 계좌는 이 의원이 그 동안 주장한 공식 후원 계좌와는 별개로 관리된 것으로 비정상적인 자금이 입출금됐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검찰의 시각이다.
검찰이 문제의 차명계좌를 찾아낸 이상 이 이원이 주장한 ‘70억원대 기업 모금’은 허위로 밝혀질 가능성도 높아졌다.
검찰 관계자는 “이 의원이 기업에서 정상적으로 모금한 자금만을 외부에 밝히고 있지만 수사 결과에 따라 민주당의 기업 모금 규모가 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저수지’ 찾아낼 수 있을까=이에 따라 검찰이 차명계좌를 추적하다가 민주당 노관규(盧官圭) 예산결산위원장이 주장한 거대한 ‘저수지’를 찾아낼지도 관심사다.
노 위원장은 지난달 이 의원이 128억5000만원을 허위로 회계 처리했다고 주장하며 “우리가 본 것은 저수지로 흘러가는 실개천의 흐름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검찰은 문제의 차명계좌와 관련해 △기업 비자금을 별도로 모금하기 위해 개설됐을 가능성 △민주당 공식 후원 계좌에서 빠져나온 돈을 중간 단계에서 관리하기 위해 이용했을 가능성 △선거자금을 당 재정위원회를 거치지 않고 노무현 당시 대통령 후보측에 직접 전달하기 위해 제3자 명의로 개설됐을 가능성 등에 대해 조사 중이다.
차명계좌에 입금된 돈의 성격이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만일 민주당이 기업에서 각종 청탁과 함께 ‘검은 돈’을 받은 뒤 노무현 후보의 선거자금으로 직접 지원한 사실이 드러날 경우 파장은 예측하기 어렵다. 이와 함께 대선 이후 당선 축하금 명목으로 기업에서 자금을 받았을 개연성도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검찰의 계좌 추적은 명의 대여자 및 현금 관리자의 잠적, 복잡한 자금 세탁,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의 반발 등으로 한계에 부닥칠 가능성도 없지 않다.
검찰이 당 계좌 추적과 동시에 삼성 LG 현대자동차 풍산 두산 롯데 등 대기업이 민주당과 한나라당에 공식 후원금 이외 비자금을 비공식 계좌에 입금했는지 조사키로 방침을 굳힌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정위용기자 viyonz@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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