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혁(李秀赫) 외교통상부 차관보를 수석대표로 한 대미 파병협의단이 비전투병을 중심으로 한 파병의사를 내비친 데 대해 미국측이 시큰둥한 반응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또 미국이 당초 우리군의 파병지로 예상되던 이라크 북부 모술지역에 대한 미 해병대 및 예비군 충원 계획을 밝혀 전체적인 파병 구도에도 변화가 예상된다.
▽한미 파병협의에서 나타난 이견=국가안전보장회의(NSC) 관계자는 7일 미국측이 정부의 대미 파병협의단에 적지 않은 불만을 토로한 사실을 감추지 않았다.
한국의 지원을 요청한 미국이 한국 파병부대의 성격과 규모 등에 관해 ‘감 놔라 배 놔라’ 할 처지는 아니지만 상당히 서운한 반응을 보이고, 한국측이 좀 더 적극적으로 파병을 추진해주기를 촉구했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현재 미국의 이라크 파병군 재배치 계획 등으로 인해 상황이 유동적으로 변했다”며 “이제 비전투병 3000명이니 하는 것도 지나간 얘기고, 파병문제는 백지상태로 봐야 한다”고 이같은 기류 변화를 설명했다.
정부는 당초부터 우리의 제안에 미국이 부정적인 반응을 보일 것이라는 점은 예상했었지만 미국의 반응이 생각보다 강경해 곤혹스러워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이에 따라 미국의 기대치를 어느 정도 충족시키는 선에서 보다 진전된 파병안을 마련해 후속 협의를 벌여야 하는 부담을 안게 됐다.
▽정부의 향후 구상=전투병 파병에 적극적인 외교안보 부처들은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의 ‘함구령’에 따라 공식적인 언급은 피했다. 그러나 실무자들은 이라크 치안 유지를 위한 전투병을 보내달라는 미측의 요구에 대해 한국이 공병 등 비전투요원을 주축으로 한 부대 파병안을 제시한 것은 사실상 ‘동문서답’이 됐다는 점을 인정하고 있다.
정부가 이번에 3000명 선의 파병규모를 제안했던 것은 미국이 기대하는 7000∼1만명 정도의 파병규모에 대한 절충점을 찾기 위한 의도였다. 그러나 실제로 협상을 벌이기도 전에 이를 언론을 통해 흘리는 바람에 협상 전략에 차질이 빚어졌다는 지적이다.
특히 파병 규모를 둘러싼 정부내 첨예한 이견 대립 등이 자칫 추가 파병 결정의 대미 신뢰도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외교부 국방부 등은 대규모 파병을 지지하나 NSC는 이에 소극적이라는 것이 정부 안팎의 관측이다.
일각에선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이 지난달 20일 한미정상회담에서 한국의 파병 결정에 감사하다는 얘기를 했지만, 그 이후에 나온 한국 정부의 입장을 지켜보고 ‘배신감’을 느끼고 있을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정부는 우선 17, 18일 열리는 한미연례안보협의회(SCM)가 이라크 추가파병을 논의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우리 정부의 비전투병 파병 타진에 대한 미국의 공식적인 첫 반응은 이 회의에 참석하는 도널드 럼즈펠드 장관을 통해 나올 가능성이 높다.
김영식기자 spear@donga.com
윤상호기자 ysh1005@donga.com
![]() |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