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상 피해 발등의 불=FTA 체결국은 관세 인하 등 상대국에 무역 특혜를 주게 된다. FTA 무대에서 소외된 나라는 통관 등에서 불이익을 당할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멕시코는 2004년부터 수입자동차에 50%의 관세를 부과할 예정이다. 멕시코와 FTA를 체결한 미국은 이 조치에서 예외다. 한국 자동차 회사는 50%의 관세 부담을 안고 미국 자동차와 경쟁을 해야 하는 셈이다.
협상이 진행 중인 일본-멕시코 FTA가 체결되면 한국산 자동차는 멕시코 시장에 발을 붙이기 어렵다.
칠레 시장에서 한국 자동차의 시장점유율이 작년 16.9%에서 올해 들어 13%대로 떨어진 요인 중 하나는 올 2월 칠레-유럽연합(EU) FTA 발효로 EU산 자동차가 칠레에서 특혜를 받기 때문이다.
FTA 체결국간 특혜 무역에 따른 한국 피해는 △EU의 터키산 섬유 무관세 △말레이시아의 한국산 철강(H형강) 관세 차별 △헝가리의 EU산 자동차 무관세 등이 꼽힌다.
내년 이후 각국간 FTA 발효가 급증하면 한국의 무역 피해는 더 불어날 수밖에 없다.
▽한국, FTA 무대 외톨이=김영준(金英俊) 외교통상부 다자통상국 외무관은 “한-칠레 FTA 비준은 한국 FTA의 추진력을 가늠할 잣대”라고 평가했다.
한-일본, 한-중국, 한-동남아국가연합(ASEAN) 등에 비해 상대적으로 부담이 적은 한-칠레 FTA를 성사시키지 못하고는 다른 나라와의 FTA 체결은 어렵다는 얘기다.
중국, ASEAN 등과 FTA를 체결했을 때 농업 피해는 한-칠레 FTA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크다. 한-칠레 FTA 비준 지연은 한국의 국내 조정 능력을 의심받는 요소가 되는 셈.
2000년 FTA 체결국간 특혜 무역은 세계 무역의 65%를 웃돌았다. 남미공동시장(MERCOSUR), 북미자유무역지대(NAFTA) 등 주요 FTA 회원국간 교역 증가율은 17∼28%로 비회원국간 교역 증가율인 14%보다 높다.
▽표를 의식해 머뭇거리는 정치권=한국의 정치권은 한-칠레 FTA 인준안 처리에 대한 필요성은 공감하면서도 FTA 실행에 따른 후속 조치가 확실해야만 처리할 수 있다는 분위기다. 물론 내년 총선을 앞두고 농촌 유권자들의 ‘표심(票心)’을 의식할 수밖에 없다는 계산이 깔려있다.
한나라당 김성식(金成植) 제2정조위원장은 “단지 피해 보상만 해주는 땜질 처방으론 농업이 살아날 길이 없다”며 “특히 당 내 농촌 지역 출신 의원들은 ‘선(先) 가결, 후(後) 대책’에 대한 반발이 여전하다”고 전했다.
민주당도 사정은 비슷하다. 김영환(金榮煥) 정책위의장은 “FTA 발효시 예상되는 피해에 대한 근본 대책을 마련한 뒤 국회에서 처리할 수 있다”고 밝혔다.
전남 나주시가 지역구인 배기운(裵奇雲) 의원은 “인준안 처리에 반대한다”며 “정부 대책은 고작 농민에게 지원된 자금의 금리를 1.5% 인하하고 FTA 발효시 향후 총 8000억원의 지원자금을 조성하겠다는 것인데 이 정도로는 농민을 설득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실질적 여당인 열린우리당측의 고민은 더 하다. 정책위 관계자는 “정부에서는 빨리 통과시켜달라고 하지만 농민들의 현실이 그리 녹록지 않다”며 어려움을 호소했다.
이은우기자 libra@donga.com
이승헌기자 dd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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