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지방분권’도 진부한 구호라고 폄훼해 버릴 수 있다. 그럼에도 이 과제에 기대를 거는 것은 두 가지 이유에서다.
첫째, 비록 그 동기가 대선 승리를 노린 전략적 고려에서 나왔다는 혐의가 없진 않으나 분권화 과제는 ‘행정수도 이전’이라는 메가톤급 정책안과 결부돼 있어 구체화될 조짐이 없지 않다.
▼교육 때문에 ‘강남行 외국行’▼
둘째, 분권화는 이 정권이 아니라도 21세기 한국의 밀레니엄 과제요, ‘한국 역사의 정언적 명령’이라고 나는 믿고 있다.
허황하게 들리기 쉬운 ‘1000년’이란 시간이 현실적 의미를 갖는 것은 ‘미래’ 아닌 ‘과거’에서다. 우리는 앞으로 100년 뒤에 어떻게 살지도 알 수 없다. 다만 지난 1000년을 어떻게 살아 왔는지는 알 수 있다.
통일신라 이후 한반도는 지난 1000여년 동안 수도 일극(一極)으로의 중앙집중, 중앙집권주의의 역사로 일관해 왔다. 그 1000년의 역사는 광복 후 반세기의 한국 현대사에서 더욱 심화되고 악화됐다. 그 결과 모든 것이 수도권으로 집중해서 사람도, 수레도 운신하기조차 어렵게 된 게 오늘의 서울이다. 시간도 우리 편은 아니다. 어느 날 분단의 경계선이 헐리기라도 하면 대거 남하할 북녘 동포들이 어디로 몰려들 것인가.
수도권 집중을 이대로 둔 채 교육 주택 범죄 청소년 공해 교통 및 빈부 문제 등의 해결을 운운하는 것은 위선 아니면 맹목이다. 우리는 21세기 말에 제3세계 징후군인 인구 2000만명의 초거대도시 서울의 출현을 수수방관하고 있을 것인가. 분권화 다극화 분산화는 한반도의 밀레니엄 과제이자 시급한 오늘의 과제다.
도대체 사람들은 왜 서울로 몰려드는 것일까. 아니 그보다 사람들은 왜 대거 삶의 터전을 옮기는 것일까. 가장 강력한 동기는 두 가지다. 첫째는 보다 나은 수입을 위해, 둘째는―특히 한국의 경우―보다 나은 교육을 위해.
교육을 위해서라면 한국의 학부모들은 모든 걸 투자하고 모든 걸 감수한다. 이른바 ‘고품질의 교육’만 보장되면 ‘기러기 아빠’가 되건, 살림이 거덜 나건 국내외를 불문하고 삶의 터전을 옮기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평준화제도가 공교육기관의 신뢰를 전락시킨 뒤 시골에서 서울로, 서울의 강북에서 강남으로, 학교에서 학원으로, 그러다간 어학연수를 위해, 조기 유학을 위해, 그보다도 아예 원정출산을 위해 이 땅의 어머니와 어린이, 아니 뱃속의 태아까지 삶의 터전을 옮긴다. 그것이 전 세계가 아연 경탄해 마지않는 인구의 이동성, 역동성이 펄펄 넘치는 ‘아! 대한민국’의 21세기초 현실이다.
이를 타개할 방책을 제안해 보겠다. 2000만 인구의 수도권은 서울의 강남과 강북, 또는 서울과 신도시의 구별 없이 고교평준화를 그대로 묶어 두고 수도권 밖의 모든 지방에선 자치단체장의 재량에 따라 평준화를 풀어 준다. 그뿐만 아니라 특수목적고와 자립형사립고도 서울의 강북을 포함해 수도권이 아니라 오직 수도권 밖의 지방도시에만 설립을 허용한다.
▼ ‘지방만 비평준화’ 대안 될수도 ▼
그럴 경우 다시 이 땅에는 어떤 사설학원, 어떤 외국 고교보다도 더 좋은 새로운 명문 고교가 족출(簇出)하리라 믿는다. 불과 10여년 전만 해도 평준화되지 않은 지방의 여러 명문교에선 매년 100명 이상이 서울대에 진학하곤 했다. 그런 학교가 지방에 있다면 왜 조기 유학을 하고, 왜 굳이 집값 비싼 강남으로 이사하겠는가. 옛날엔 서울의 좋은 학교에 가난한 시골 사람이 자식을 보냈다. 이젠 돈 많은 서울 사람이 시골의 좋은 학교에 자식을 보내도 좋지 않은가. 게다가 그 애들이 시골에서 ‘또 다른 한국’이 있다는 걸 깨닫는 것도 좋은 일이다. 생판 낯설고 물선 외국 학교에도 보내는 판에.
이것만이 수도권의 초비대화를 막는 분권화의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 믿는데 어떨지…. 게다가 한국 공교육의 더 이상의 붕괴도 막을 수 있는….
최정호 울산대 석좌교수·언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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