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원금 1조원에 농업 살아날까 ▼
2000년이던가. 그에게서 전화가 왔다. 한-칠레 자유무역협정(FTA) 문제로 시끄러울 때였다. 함께 칠레에 가자는 것이었다. “농민인 내가 먼저 칠레의 과수농업을 좀 알아야겠다”는 얘기였다. 비용은 자부담으로 하겠으니 촬영팀에 합류시켜 달라고 했다. 필자는 그때 마침 ‘칠레농업’ 다큐멘터리를 기획하고 있던 참이었다. “어, 자부담으로 칠레에 가겠다? 비용도 만만치 않은데…. 우리 농업 희망 있네”라고 생각했다.
3년여가 지난 지금, 이번엔 내가 그에게 전화를 했다. 한-칠레 FTA 논란이 여전한데,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그가 말했다. “어차피 우리 농업도 구조조정을 피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위기가 기회죠. 이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 칠레에 우리의 배나 포도를 판매한다는 적극적인 사고가 필요하죠.”
그는 FTA가 결국은 발효될 것으로 예상했다. 그렇지만 정부가 제시한 8000억원의 FTA특별지원기금에 대해서는 별 기대를 하지 않는 듯했다. “받으면 빚이 된다”는 것이다. 그는 오히려 FTA 발효를 우리 농업의 끝으로 보는 농업계 분위기를 언짢아했다.
요즘 농업계에는 FTA 비상이 걸렸다. 10월 13일 노무현 대통령이 국회 연설에서 ‘정기국회 회기 내 통과’를 역설한 데 이어 FTA 비준안이 11월 10일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에 상정됐기 때문이다. 상정 여부에 대한 표결결과는 8 대 7. 찬반이 팽팽했다. 농업계도 마찬가지다. 이념이 강한 농업단체는 비준을 반대하는 분위기이나 대부분의 농민단체는 ‘조건부 통과’를 원하고 있다. 박관민씨가 ‘FTA 발효’를 점치는 것은 이런 분위기를 감안한 것이다.
필자는 FTA를 찬성하는 입장이었다. 적극적인 개방과 수출 농업이 경쟁력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우리 농민의 저력도 높게 평가했다. 하지만 요즘 마음이 심히 흔들리고 있다. 정부에서 마련한 FTA 발효 대비 농업지원대책안을 보면서다. 8000억원의 정부 지원기금은 큰돈이다. 지방자치단체 지원금을 포함하면 1조원에 이른다.
그런데 왜 찜찜한 것일까. “지원금 1조원으로 과연 우리 농업을 살릴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 때문이다. 나는 ‘살릴 수 없다’고 자신 있게 말한다. FTA 지원대책에는 돈만 있지 비전이 없기 때문이다. 돈으로 모든 걸 때워보려는 정부 속셈을 농민이 모를 리 없다.
1992년 우루과이라운드(UR) 때도 57조원이라는 어마어마한 돈을 농촌에 쏟아 부었다. 농촌 구조조정 비용이었다. 그 결과에 대해서는 현재 긍정적 평가보다는 부정적 평가가 많다. 오히려 농심(農心)의 해이와 부채만 키워 왔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번 FTA 기금의 특징은 고품질 생산기반과 규모화다. 여기에 70%가 들어간다. 폐업농 기금도 14%에 이른다. 피해가 크다는 포도농가 4000호 중 1000호(면적으로는 100ha)가 폐업을 전망하고 있다. 정부가 “돈이나 타먹고 말아. 포도는 무슨 포도”라며 농민 등을 떠미는 것은 아닌지…. 폐업보상금을 흔들면서 말이다. 또 기금 1조원이 농가부채만 키우는 결과를 초래하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
▼세계와 겨룰 자신감 길러줘야 ▼
이제 우리 모두는 가면을 벗을 때다. 넉넉할 때 사소한 실수는 넘어갈 수 있다. 하지만 지금 우리 농업은 최악의 상황이다. 돈보다는 비전이 담긴 FTA 전략이 필요하다. ‘꿈★은 이루어진다.’ 2002월드컵축구대회를 통해 체험한 것은 자신감이다. 우리 농업인도 얼마든지 세계의 선수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체험하도록 해주는 게 그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농민도 사기를 먹고 살기 때문이다.
신동헌 전국농민단체협의회 사무총장 농업전문 프리랜서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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