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는 미국이 보다 많은 규모로 파병을 요청한 것을 사실상 거절한다는 뜻을 공개적으로 천명한 셈이다.
미국은 치안유지 이외의 목적으로 파병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는 입장을 여러 차례 밝혀왔기 때문에 17, 18일 도널드 럼즈펠드 미 국방장관이 참석한 가운데 서울에서 열리는 한미연례안보협의회(SCM)에선 파병 문제로 난기류가 조성될 개연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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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건지원 3천명이내 파병” |
노 대통령의 지침은 미국의 요구보다는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주도로 이뤄진 2차 이라크 현지조사 결과에 바탕하고 있다. 2차 조사단은 “이라크 지도층 인사들은 재건지원 역할을 하는 부대의 파병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고, 치안 안정을 위해 이라크 군 및 경찰의 훈련을 희망하고 있다”고 보고했었다.
문제는 이번 지침이 한미관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정부 관계자는 “물론 미국이 우리 정부의 결정에 뭐라고 할 입장은 아니겠지만 한반도 문제를 담당하는 관리들의 시각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특히 파병 결정 이전부터 노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 관계자들이 이라크 파병과 북한 핵 문제를 연계하자고 미국에 요청했던 부분이 오히려 짐이 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미국이 이라크 문제에 매이는 바람에 북핵 문제에 신경을 덜 쓰게 되거나, 북핵 문제의 해법에 관한 한국의 요구에 냉담하게 나올 개연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노 대통령의 지침은 또 주한미군 재배치 문제와 같은 민감한 현안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일각에서는 미국이 파병에 관한 한국의 미온적 태도에 불만을 느끼고, 파병요청을 철회하는 대신에 주한미군을 빼서 이라크에 투입하려 들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그럼에도 노 대통령이 이번 지침을 정한 데에는 이라크 현지의 치안상황이 갈수록 불안해지면서 국내 여론과 정치권의 기류가 전투병 중심의 파병에 부정적인 쪽으로 흐르고 있는 것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한편 노 대통령의 파병지침을 이틀이 지나서야 청와대가 공식 발표하고 나선 것은 파병 규모 등을 둘러싼 정부 내 갈등을 차단하는 동시에, SCM을 앞두고 대미 협상력을 높이기 위한 것이란 분석도 없지 않다. 이날 발표는 그동안 소규모 비전투병 위주 파병안을 주도해온 NSC가 적극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훈기자 jnghn@donga.com
김영식기자 spea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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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수들 밀집 지역에 맨몸으로 갈 순 없다”…국방부 안전문제 강조
노무현 대통령이 13일 이라크 추가 파병 규모를 3000명 이내로 못박은 것은 파병 장병들의 안전을 고려한 결정으로 해석된다.
특히 12일 서희, 제마부대가 주둔 중인 이라크 나시리야에서 발생한 차량 폭탄테러로 이탈리아군이 다수 사망하는 등 현지 치안이 급격히 악화되면서 전투병 비율이 높은 대규모 병력을 보낼 경우 안전을 장담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또 터키의 파병 철회에 이어 최근 일본도 파병 시기를 내년으로 연기하는 등 부정적 기류가 거세지는 세계 파병 여론도 외면할 수 없었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분석했다.
이날 결정에 따라 파병 규모와 성격을 둘러싼 지루한 논쟁은 일단 비전투병 재건지원 부대 파병안을 고수한 국가안전보장회의(NSC)의 ‘완승’으로 가닥이 잡혔다.
NSC를 중심으로 한 ‘자주파’는 다수의 전투병이 현지 치안 유지에 나설 경우 작전반경이 넓어져 테러 위험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다는 논리를 전개해 왔다.
서희, 제마부대처럼 비전투병 위주로 가급적 파병 규모를 축소하는 한편 현지 미군의 경호를 받을 수 있는 지역에 보내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게 자주파의 입장이었다.
그러나 국방부를 중심으로 한 외교 안보라인의 ‘반론’도 만만찮다. 현지 사태가 갈수록 악화되는 상황에서 파병 장병들의 안전을 보장하려면 일정 규모의 전투병 파병은 불가피하다는 판단에서다.
최근 차영구(車榮九) 국방부 정책실장도 “책임지역을 맡는 포괄적 접근이 우리 장병들의 생명을 더 잘 보호해 줄 수 있다”고 강조했다. 국방부의 한 관계자는 “맹수가 있는 밀림지역을 들어가는데 맨몸으로 갈 순 없다. 재건지원 부대 위주로 편성하더라도 자체 경비와 지역책임을 맡기 위해선 보병 수요가 크게 줄어들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윤상호기자 ysh100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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