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투자협정 저지와 스크린쿼터 지키기 영화인대책위원회’(공동집행위원장 안성기 정지영)가 21일의 기자회견에서 전한 스크린쿼터(한국영화 의무상영제)에 대한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의 발언이다.
19일 대통령과 영화인들이 청와대에서 면담하는 자리에서 나온 이 말은 스크린쿼터를 축소하겠다는 뜻일까, 아니면 현행 수준을 유지하겠다는 것일까. 대통령의 말을 놓고 청와대와 영화계의 해석은 영 딴판이다.
‘노심(盧心)’을 꿰뚫고 있다는 윤태영(尹太瀛) 청와대 대변인은 20일 오후 브리핑에서 노 대통령의 말은 “당장 밀어붙이지는 않겠다는 취지”라고 밝혔다. 그러나 대책위는 기자회견에서 윤 대변인의 해석을 강하게 반박했다. 노 대통령이 영화인들과의 면담에서 “영화인들이 반대한다면 일방적으로 처리하지는 않겠다”고 말한 것은 사실상 스크린쿼터를 축소하지 않겠다는 견해를 밝힌 것이란 게 영화인들의 해석이다. 한 영화인은 “스크린쿼터를 줄여도 한국 영화계에는 별 영향이 없다는 식으로 청와대 관료들이 대통령에게 부정확한 보고를 하는 것 같다”며 “노 대통령이 미국보다는 국내, 즉 재계나 외교통상부 관료들에게서 압력을 받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영화인들의 주장처럼 대통령 측근들이 ‘노심’을 왜곡한 것일까, 아니면 영화계가 대통령의 말을 아전인수식으로 확대해석한 것일까.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노 대통령의 발언이 양쪽 모두에게 자기 식대로 해석할 빌미를 제공했다는 점이다. 게다가 발언에 일관성이 없는 점도 문제다.
노 대통령은 지난달 19일 태국 방콕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회의에 참석했을 때 미국 타임워너의 휴 스티븐 부회장에게 “스크린쿼터 문제가 외국인 투자에 장애가 안 되도록 설득 노력을 계속해 가능한 한 이른 시일 안에 해결되도록 하겠다”고 말한 바 있다. 이 발언이 전해지자 영화계는 이달 말 농성과 옥외집회 등을 갖겠다고 발표했다. 강경투쟁에 앞서 영화배우 안성기 명계남 문소리, 영화감독 정지영 이은씨 등 영화인 10명이 19일 오후 노 대통령과 면담을 가진 것인데 이 자리에서 나온 대통령의 발언이 문제를 더 꼬이게 한 셈이다.
결국 노 대통령의 애매한 화법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스크린쿼터 문제를 출구 없는 미로 속으로 밀어넣고 있는 것은 아닐까.
김갑식 문화부기자 dunanwor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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