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대통령 단점은 현안 질질 끄는 것’

  • 입력 2003년 12월 2일 18시 44분


민주당 조순형 대표가 “노무현 대통령이 가장 잘못하는 것 중 하나가 중요한 문제를 놓고 몇 달씩 질질 끄는 점”이라고 말했다. 조 대표는 재신임 문제를 대표적 사례로 꼽았다. 공감이 가는 지적이다. 노 대통령이 측근비리를 거론하며 불쑥 재신임 카드를 꺼내 든 것은 10월 10일이었다. 이후 두 달 가까이 국정은 표류해 왔다.

노 대통령은 측근비리를 이유로 재신임까지 받겠다고 한 이상 국회를 통과한 특검법안을 수용하는 게 순리(順理)였다. 그러나 거부권을 행사하고 한나라당 또한 재의(再議) 요구를 거부하면서 국회가 마비됐다. 재신임 문제는 결국 청와대와 한나라당간 정국주도권 잡기 싸움으로 변질되면서 그 본질마저 희석됐다.

그런데도 노 대통령은 며칠 전 TV회견에서 재신임을 받겠다는 소신을 거듭 밝혔다. 헌법재판소도 재신임 국민투표가 사실상 위헌이라는 의사표시를 한 마당에 굳이 그런 발언을 해야 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현안을 하나하나 정리해 나가야 할 때 오히려 논란을 키우는 것은 책임 있는 지도자의 자세가 아니다. 열린우리당 김원기 공동의장이 어제 재신임 투표 철회를 시사하는 발언을 하긴 했지만 노 대통령 스스로 철회입장을 분명히 밝히고 그동안의 소모적 논란에 대해 국민에게 사과하는 것이 옳다.

노 대통령이 우리당 입당문제에 대해 계속 모호한 태도를 취하고 있는 것도 ‘문제를 질질 끄는’ 경우에 해당한다. 우리당이 노 대통령의 정치적 지지기반임을 모르는 국민은 없다. 하루빨리 입당해 우리당이 집권당임을 선언하고 내년 총선에서 유권자의 심판을 받는 것이 정도(正道)다.

국가적 정치적 현안에 대해 충분한 토론과 의견수렴 과정을 거치는 것은 좋다. 그러나 지나치게 과정에 얽매이다 이해당사자간 갈등을 심화시키고 문제를 더 어렵게 한 경우가 없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대통령이 결단의 시기를 놓치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나라와 국민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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