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혐오’ 부추긴다면 ▼
대통령은 지금 해서는 안 될 일을 하고 있다. 대통령은 헌법에 규정된 법률안거부권을 행사했을 뿐 법리를 벗어난 잘못된 일을 한 적 없다고 하겠지만, 그렇지 않다. 대통령은 지금 ‘정치’를 죽이고 있다. 정당의 후보로 대권에 이른 정치인이 정치를 죽인다는 것이 도대체 무슨 말인가. 최근 대통령의 언행에서 드러난 인식은 정치인은 몹쓸 사람이며, 정당은 역시 몹쓸 집단이다. 몇백억원대에 이르는 정치자금의 검은 돈뭉치가 잇달아 불거져 나오면서 정치불신은 이제 극에 달했다. 이런 때 대통령은 정쟁의 불심지까지 돋운 셈이다. 정치혐오증을 부추긴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대통령은 왜 정치를 막다른 골목길로 몰고 가는가. 한마디로 대통령은 지금 같은 ‘여소야대’가 아닌 새로운 정치판이 필요한 것이다. 그러자면 현 정치판에 국민의 정나미가 떨어져야 한다. 지금 대통령이 하고 싶은 말은 ‘국민 여러분, 발목을 잡는 다수당 때문에 대통령 못해 먹겠소. 나를 협박하는 이 사람들 혼 좀 내주시오’ 아니겠는가. 부각시키려는 것은 ‘몹쓸 정치’ ‘핍박받는 대통령’이다. 동정심이 쏠릴 만하지 않은가. 내년 총선에 어떤 조직이 구원부대로 나설지도 뻔하다. 대통령의 정치가 이런 수준이라면 할 말 없다. 여기서 코드인사들의 ‘사회주류를 확 바꿔야 한다’는 주술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정치를 죽이면 새 정치가 절로 올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기 바란다. 정치란 생물(生物)이다. 부단히 움직이면서 변해 가는 것이지, 김장 무 자르듯 잘라질 수도 없고 잘라지지도 않는다. 군사정부가 혁명적 방법으로 잘라낸 적이 있지만 정통성 없는 정권에서나 가능했던 일이다. 정치가 죽고 나면 후폭풍이 대통령에게 먼저 돌아온다는 사실을 모르는가. 한번 깊어진 정치불신은 좀처럼 회복되지 않는다. 정치가 죽는 판에 대통령만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또 어떤 정치구도에서 대통령에 당선됐는가를 망각해서는 안 된다. 유권자들은 한나라당이란 거대 야당의 존재를 알면서 노무현 후보를 선택했다. 여러 풀이가 있겠지만, 대통령과 의회간의 견제와 균형을 의식한 절묘한 메시지 아닌가. 그런 구도가 아니었다면 당선됐을지 의문이다. 따라서 당선이 정치구도를 무너뜨리라는 것은 아닐뿐더러 그 역할은 오로지 유권자의 몫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왜 정치한다고 나섰나 ▼
대통령이 정치를 죽이는 일이 또 있다. ‘고유권한’을 앞세워 귀찮고 힘든 일은 해결할 생각 않고, 법리 뒤에 숨어 버리는 것이다. 측근비리 특검법안 거부가 실례다. 대통령에겐 여러 권한이 있지만 정치를 살리는 데 활용하라는 것이지, 죽이는 데 원용해서 될 일인가. ‘고유권한’이란 말도 적절치 않다. 정치란 어차피 협상이다. 순탄한 논의가 있을 수 있지만, 때론 격한 토론이 벌어질 때도 있다. 정당은 다양한 의견을 대변해야 하고 때론 큰소리가 나오는 법이다. 한 가지 목소리만 있는 순치된 국회를 바라는 것인가. 특검 지지 민의는 깔아뭉개도 된단 말인가. 힘든 사안일수록 정치력을 발휘해야 하는데, 법리에 맡겨 버린다면 왜 정치를 한다고 나섰는가. 이런 식이라면 정치의 영역은 줄어들어 고사하고 만다. 정치란 문제를 푸는 데 있다. 지금 절실한 것도 해결의 리더십이다. 그런데도 지금까지 해결보다 오히려 대통령이 만든 문제가 어디 한둘인가. 국민이 바라는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먹고살 일자리 만들기인가, 새판 짜기 뒤엎기인가. 지금을 혁명 중이라고 착각하지 않기 바란다.
최규철 논설주간 kih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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