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김수경/김근태 대표 '그때와 지금'

  • 입력 2003년 12월 7일 18시 20분


지난해 민주당 최고위원 경선과정에서 불법 정치자금을 받았다고 ‘양심고백’한 뒤 불구속 기소됐던 김근태(金槿泰) 열린우리당 원내대표가 5일 항소심에서 선고유예 판결을 받았다.

이 같은 결과는 법원은 김 대표의 유죄를 인정하면서도 깨끗한 정치문화를 만들려는 그의 노력을 감안해 법이 허용하는 최대한의 관용을 베푼 것이다.

그러나 김 대표는 판결 후 기자실을 찾아와 “법원의 고뇌가 담긴 결정에 감사드린다”면서도 “회계책임자들에 대한 감독을 소홀히 해 정치자금이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신고되지 않은 것일 뿐 범행 의도는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변호인들과 의논해 상고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덧붙였다.

그의 말을 들으면서 문득 지난해 그가 ‘양심고백’을 하고 난 뒤의 상황이 떠올랐다. 당시 국회의원 60명과 10개 대학 총장 등은 검찰총장에게 “제2, 제3의 양심선언을 막지 않도록 선처를 바란다”는 내용의 탄원서를 제출했다. 깨끗한 정치를 열망하는 사회 각계의 바람이 투영된 것이었다. 국민도 그의 용기 있는 고백에 박수를 보냈고 이어 불법 정치자금에 대한 근절이 필요하다는 여론을 불러왔다.

그후 김 대표는 올 8월 열린 1심에서 벌금 500만원에 추징금 2000만원을 선고받은 뒤 “양심고백을 한 나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으며 이제 국민이 내리는 양심의 판결을 기다리겠다”고 담담히 소감을 밝혔다.

그러나 지난달 열린 항소심 결심(結審)공판이 끝난 뒤 기자들과 만나 “깨끗한 정치문화를 만들려는 나의 노력이 헛되지 않으려면 적어도 선고유예 판결을 내려야 한다”며 1심 때와는 다소 다른 뉘앙스로 말했다.

이날 법원은 그의 희망대로 양심고백을 높이 평가해 선고유예 판결을 내렸다. 그러자 김 대표는 다시 “투명한 정치를 위해 양심고백을 한 내 충정을 (재판부가) 받아들이지 않은 것 같다. 범행 의도가 있었다는 법원의 판단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노골적으로 아쉬움을 토로했다. 분명히 무죄를 주장하는 것으로 들리는 발언이었다.

양심고백이 어려운 까닭은, 그로 인한 어떤 결과에도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이다.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된다면 양심고백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불법 정치자금이 횡행하는 한국의 정치판에서 그의 양심고백이 혼탁한 정치문화를 개선하는 큰 전환점이 됐다는 사실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김 대표가 그의 말처럼 묵묵히 국민이 내리는 양심의 판결에 만족했다면 그의 양심고백은 더욱 빛이 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김수경 사회1부 기자 sk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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