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외무성의 한 고위당국자는 자위대 파병 결정 직후 이 같은 ‘속내’를 털어놨다고 마이니치신문이 10일 전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가 파병 방침을 취소해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과의 개인적인 신뢰 관계에 흠집이 생기면 북핵 문제를 둘러싼 외교전에서 일본의 입지가 좁아질 수밖에 없다는 점을 고려했다는 것.
이 당국자는 “일본에 있어 이라크 사태는 큰 문제가 아니고 최대 관심사는 북한 핵과 일본인 납치문제”라며 “이라크에서 고전하는 미국을 돕는 대신 북한 문제에서 일본의 주장을 미국을 통해 관철시키려는 의도”라고 설명했다.
현 상황에서는 미 행정부 내의 네오콘(신보수주의자)보다 콜린 파월 미 국무부 장관, 리처드 아미티지 국무부 부장관 등 대화론자에게 힘을 실어주는 편이 일본에도 유리하다는 판단을 내렸다는 것.
일본 정부는 미국의 강력한 지원 덕택에 6자회담 참가가 가능했던 터라 미국에 외교적 부채를 지고 있는 처지. 고이즈미 정권의 최대 현안인 일본인 납치 문제만 해도 6자회담 참가국 중 미국만이 일본의 편을 들어주고 있는 상황이다.
9일 각의에서 이라크 파병을 최종 결정하기 하루 전에 소집된 집권 자민당의 회의 명칭도 ‘이라크 및 북한문제 연락협의회’였다. 자위대 파병과 북한 문제를 ‘한 묶음’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일본 언론은 미국과 일본이 이라크와 북한 문제에서 각각 상대방의 편의를 봐주는 일종의 외교적 거래를 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고이즈미 총리가 야당의 반대를 무릅쓰고 자위대 파병을 결정한 이면에는 이런 북한 문제 계산법 외에도 헌법 개정의 발판으로 삼으려는 의도가 있다는 게 일본 언론의 분석이다.
이는 아사히신문이 “자위대 파병은 일본이 가야 할 길을 크게 바꿔 놓을 위험이 있다”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한 반면 평소 평화헌법 개정을 주장해 온 요미우리신문은 “총리의 역사적 결단”이라고 추켜세운 데서도 알 수 있다.
도쿄=박원재특파원parkw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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