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9일 “미국의 목표는 (북한의) 핵무기 프로그램을 입증할 수 있고, 돌이킬 수 없는 방식으로 폐기하는 것”이라고 재천명한 것은 북한뿐 아니라 제2차 6자회담의 조기개최를 희망해 온 한국 중국 등 관련국들을 낙담케 한다.
부시 대통령의 발언은 기존 입장을 되풀이한 것이지만, 시기적으론 공교롭게도 북한 외무성 대변인이 이날 핵동결의 대가로 미국의 지원을 요구한 직후에 나온 것인 만큼 사실상 북측 제안을 묵살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북한은 제2차 6자회담에서 북-미의 동시 조치를 통해 핵문제의 돌파구를 마련하기를 희망하고 있으나 미국의 강경한 원칙을 재확인한 이상 쉽게 회담에 응할 가능성은 그리 크지 않다.
9일 부시 대통령과 회담을 가진 원자바오(溫家寶) 중국 총리도 제2차 6자회담 개최가 시기상조라는 입장을 나타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미국과 북한의 완강한 태도에 비춰볼 때 회담성사를 위해선 좀 더 시간이 필요하다는 판단을 중국이 내렸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외교가 일각에서는 중국이 북-미 사이의 중재자 역할을 하는 것에 이제 지칠 만도 하다고 보고 있다.
특히 한미일 3국이 3, 4일 워싱턴 고위급 접촉에서 마련한 제2차 6자회담 공동문안이 북한에 전달되는 시점에서 이 같은 부정적 기류가 조성되는 것은 눈여겨 볼 일이다.
한미일은 제1차 6자회담(8월 27∼29일)에서 북한대표가 퇴장한 가운데 발표된 의장요약문의 실효성을 둘러싼 회의가 제기된 것을 거울삼아 이번엔 회담의 가시적 성과를 만들어내기 위해 공동문안에 대한 사전합의를 모색해 왔다.
그러나 현재 기류는 북한이 한미일의 공동문안을 부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으며, 미국 역시 북한의 보상요구를 외면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상황에선 제2차 6자회담이 열린다고 해도 북-미가 종전 입장을 되풀이하는 데 그칠 개연성이 높다.
그러나 정부는 북한이 태도 변화를 보여 제2차 6자회담의 연내 개최를 수용할 것이라는 기대를 아직 버리지 않고 있다.
윤영관(尹永寬) 외교통상부 장관은 10일 “한미일의 공동문안을 중국에 전달했지만 아직 중국이 이를 북한에 전달한 것으로는 보지 않는다”며 “제2차 6자회담의 금년 내 개최여부는 결정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김영식기자 spea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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