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효종 교수=정치시장의 진입장벽에 대해 논의해 볼까요. 기성 정당의 이해관계와 지역주의 때문에 새 피를 공급받지 못한다면 품질 높고 생산적인 정치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생각입니다.
▽김용호 교수=우선 정당의 등록요건부터 문제가 있습니다. 전국선거에서 2% 이상 득표하지 못한 정당은 정당법상 자동해산 됩니다. 가령 진보정당들이 어렵게 창당을 해 선거를 치른 뒤 기진맥진해 있을 때 기성정당은 이들 진보진영 인사를 영입합니다. 그러면 진보정당의 인적 기반은 더욱 약화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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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왜 정치개혁인가 - <2>정치안정의 조건 - <3>정치자금 투명화 - <4>정당구조 개편 |
둘째, 현역 의원들은 의정보고회 등의 형식으로 자신을 홍보하는 등 많은 특혜가 주어진 반면 원외인사 또는 정치신인들은 사전선거운동 규제 조항 때문에 정당 후보에 비해 불리한 점이 많습니다. 불공정 게임인 셈입니다.
▽이기선 국장=정치신인과 현역 의원간 선거운동 기회 불균형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선관위는 이미 예비후보자제도를 도입하자는 의견을 국회에 내놓은 상태입니다. 선거 120일 전에 예비후보자로 선관위에 신고하면 일정범위 내에서 선거운동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죠.
▽이재호 위원=현행 소선거구제 하에서는 기본적으로 정치판 물갈이가 어렵습니다. 1선거구에 1명밖에 안 뽑으니까 신인들의 진입이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차제에 중대선거구제를 진지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습니다. 또 선거구 획정만큼은 국회의원들에게만 맡겨놔서는 안 된다는 생각입니다. 벌써부터 국회의원들은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의 자문기구인 범국민정치개혁협의회가 제출한 개혁안을 ‘어디까지나 참고용일 뿐’이라며 일축하는 분위기입니다.
▽임혁백 교수=중대선거구제가 오히려 기성 정치인에게 유리한 구도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선거구가 커지면 지명도가 높은 기성 정치인이 훨씬 유리해지지 않겠습니까. 신진정치인을 정치권에 진입시키기 위해서는 중대선거구제보다는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통해 신진후보를 내세우는 것이 효과적일 것입니다.
▽모종린 교수=국민이 원하는 정치인들이 정치에 진출하도록 하려면 최선의 방법은 자유경쟁 체제에 맡겨둬 시장이 알아서 해결토록 하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특정세력의 정치권 진입을 위한 제도적 혜택보다는 경쟁시스템을 강화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지역구도의 인위적 변화를 위한 비례대표제 확대도 신중히 판단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김 교수=중대선거구제가 지역주의를 얼마나 타파할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습니다. 중대선거구제론의 근거 중 하나인 ‘돈이 적게 든다’는 가설 역시 맞지 않습니다. 선거구가 커지면 돈이 더 들 수도 있습니다.
▽유인태 수석=그러나 소선거구제 하에서는 ‘영남당’ ‘호남당’의 틀에서 벗어날 수 없어요. 한 지역 내 모든 선거구를 특정 정당이 싹쓸이하다시피 하니까요. 소비자 입장에서 보면 두 당 후보가 모두 마음에 안 들어 다른 상품이 공급돼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보완대책 중 하나로 한나라당 일부 의원들이 제기한 바 있는 복합선거구제 문제를 논의해볼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홍준표(洪準杓) 의원이 얼마 전 얘기한 것처럼 6대 광역시에 한해 몇 개 선거구를 하나로 묶어 광역화된 선거구별로 2∼5인씩 뽑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묶다 보면 대도시에서는 의석수가 줄어들어 200석 정도까지 지역구 의석수를 감축할 수 있습니다. 동시에 정책과 전문성을 갖춘 비례대표수를 지역구 수의 절반 정도까지 끌어올려 전체 의석을 299석 정도로 하는 방안이 어떻겠습니까.
광역시뿐만 아니라 수원처럼 (권선구 장안구 등) 행정구를 가진 대도시들도 중대선거구제로 하는 방안이 괜찮을 듯싶습니다. 특정지역 의석이 특정 정당에 의해 독점되는 지역구도 해소에 도움이 되고 노동계 등도 원내에 진출할 수 있도록 말이죠.
▽임 교수=구체적으로 어떻게 비례대표를 구성하자는 것입니까.
▽유 수석=만약 소선거구제를 유지할 수밖에 없다면 지역구 수를 227개로 유지하고 비례대표 수를 현재 46개에서 지역구 수의 절반(114개) 가까이 늘려서 전체 의석을 340개 정도로 하면 어떨까 합니다. 비례대표는 현재와 같은 전국단위 비례대표가 아닌 권역별로 뽑는 게 지역구도 완화에 좋을 듯싶고요.
▽김 교수=1인 2표제로 비례대표를 뽑으면 소선거구제의 단점을 보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지역구 득표율에 의해 의석수가 할당됐던 과거의 비례대표와 달리 이제는 국민의 직접적인 선택에 의해 비례대표 의원이 선출되기 때문입니다.
▽임 교수=비례대표제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과거의 전국구 이미지를 벗어야 합니다. 그러자면 비례대표 후보도 국민이 직접 선출하는 제도를 만들어야 합니다. 비례대표 명부를 중앙당이 일방적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유권자들이 비례대표 명부를 만드는 과정에서부터 참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 국장=지역구도와 돈 선거를 타파하기 위해서는 아예 전국을 한 단위로 하는 대선거구 비례대표로 가면 좋겠어요. 선거구 획정 때문에 싸울 일도 없고, 소선거구제나 중선거구제처럼 후보자와 유권자가 직접 대면해서 선거운동을 할 수가 없으니 돈도 쓸 수 없지 않겠습니까.
▽임 교수=아니지요. 대의제(代議制) 민주주의라는 것은 지역대표를 기본으로 하는 것인데 국회의원을 모조리 전국단위 비례대표로 뽑는다면 지역 대표성이 실종될 수 있습니다.
▽김 교수=당에서 국가정책 개발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사람들로 2배수 또는 3배수 정도의 비례대표후보 인재풀을 만들고 이들로 하여금 권역별로 경선을 치르도록 하는 방안도 있을 것입니다. 독일은 정당명부를 란트(주·州)별로 만드는데 이 과정에 당원들이 참여합니다. 선거후보의 등록 요건 중에는 당원들의 비밀투표를 통해 후보 선출이 제대로 이뤄졌다는 서류와 현장참석자 두 명의 증언이 포함돼 있습니다.
정리=박성원기자 swpark@donga.com
▼중대선거구-권역별 비례대표 4당 제각각▼
중대선거구제와 권역별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에 대해서는 참석 전문가들간에 뜨거운 논란을 빚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각 당도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극명하게 엇갈리는 반응을 보였다. 선거구제가 바로 총선에서 얻을 의석수와 직결돼 있는 가장 민감한 사안이기 때문이다.
국회 정치개혁특위의 한나라당측 간사인 이경재(李敬在) 의원은 “중대선거구제를 해봐도 호남에서는 한나라당이 파고들 여지가 없다. 이는 오직 여권의 영남권 진출, 즉 ‘동진(東進)정책’을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고 거부 입장을 밝혔다. 그는 또 “권역별 비례대표제 역시 같은 이유로 고려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정개특위 민주당측 간사인 박주선(朴柱宣) 의원은 “어정쩡한 중대선거구제가 아니라 확실하게 5인 이상의 대선거구제를 하자는 게 우리 당 입장”이라고 말했다. 그는 “대선거구제는 특정 당의 특정 지역 싹쓸이를 막아 지역 구도를 확실히 완화시킬 수 있고 사람 동원에 의한 돈 선거를 포기하게 만들어 정책선거 미디어선거로 전환시킬 수 있다”고 강조했다. 권역별 비례대표제에 대해서는 “지역구도 완화의 효과는 별로일 것”이라면서도 소극적 찬성 입장을 밝혔다.
열린우리당 간사인 신기남(辛基南) 의원은 “우리는 지역구도 완화를 위해 중대선거구제와 권역별 정당명부제가 실현되기를 강력히 희망했으나 정개특위 자문기구인 범국민정치개혁협의회가 이를 채택하지 않아 유감이다”고 말했다.
자민련 김학원(金學元) 원내총무는 “특정 지역의 특정 당 독식을 원천적으로 막기 위해서는 대선거구제가 바람직하지만 현실적으로 수용되지 않는다면 현행 소선거구제와 전국 단위 비례대표제로 가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박성원기자 swpark@donga.com
▼토론참석자(가나다순)▼
▽강경식(姜慶植) 국가경영전략연구원 이사장
▽김용호(金容浩) 인하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모종린(牟鍾璘) 연세대 국제학대학원 교수
▽박효종(朴孝鍾) 서울대 국민윤리교육과 교수
▽양수길(楊秀吉) 전 주OECD대사
▽유인태(柳寅泰) 대통령정무수석비서관
▽이기선(李基善) 중앙선관위 홍보국장
▽이재호(李載昊) 본보 논설위원
▽임혁백(任爀伯) 고려대 정경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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