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 '불법자금 한나라 10분의1 넘으면 사퇴＂]野-檢 동시 압박

노무현 대통령(오른쪽에서 두번째)이 4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4당 대표회동에서 열린우리당 김원기 상임공동의장(왼쪽에서 첫번째)의 말을 듣고 있다. 이날 1시간40분이 넘게 계속된 회동에서 참석자들은 열띤 신경전을 벌이기도 했다. -박경모기자

지난 대통령선거에서 노무현(盧武鉉) 후보측이 받은 불법 대선자금이 한나라당 불법 대선자금의 10%를 넘는지가 정국의 핵으로 등장했다.

노 대통령이 ‘10%가 넘을 경우’ 대통령 직을 사퇴하겠다고 공언했기 때문이다.

야권에선 노 대통령이 검찰의 수사 경과 및 대선 당시 상황을 면밀하게 파악한 결과 ‘10% 이하’라는 확신을 갖게 된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노 대통령 자신이 ‘동업자’라고 표현했던 측근 안희정(安熙正)씨가 불법 대선자금 11억4000만원을 받은 혐의가 드러나자 10%라는 기준을 제시함으로써 한나라당과의 차별화를 꾀하려는 전술을 펴고 있는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한나라당이 14일 논평을 통해 “노 대통령은 10%건, 5%건 부정한 돈으로 당선된 사실이 판명되면 사법적 정치적 도덕적 책임을 져야 한다”며 불법 대선자금 수수 자체의 문제점을 강조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문제는 실제 드러나게 될 불법 대선자금의 규모가 과연 얼마나 될 것이냐는 점이다.

민주당 대통령후보였던 노 대통령 입장에서 자신과 관련된 불법 대선자금이란 민주당이 지난 대선에 쓴 돈 가운데 당비 공식후원금 국고지원금 등 선관위에 신고한 돈을 제외한 나머지 전체로 볼 수 있다.

따라서 현재까지 검찰 수사를 통해 나타난 한나라당의 불법 대선자금이 502억원인 점을 감안할 때 노 대통령의 판단은 자신과 관련된 불법 대선자금이 50억원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검찰 주변에선 안희정씨가 받은 불법 대선자금이 수십억원에 달할 것이란 얘기가 나오고 있다. 또 노 대통령은 최근 사석에서 “안씨가 대선자금 수십억원을 만들어 왔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를 감안하면 노 대통령의 판단 근거를 두 가지로 추정할 수 있다.

안씨가 받았다는 수십억원 외에는 더 이상 ‘큰 덩어리’가 없다는 판단을 했을 것이란 추정이다. 또 자신과 관련된 불법 대선자금이 앞으로 50억원을 넘어서더라도 한나라당의 불법 대선자금 규모가 지금까지 나온 502억원을 훨씬 넘어설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는 분석도 가능하다.

한나라당 최병렬(崔秉烈) 대표는 14일 기자들과 만나 “앞으로 나올 불법 대선자금은 1억∼2억원 또는 3억∼4억원 규모 이상은 안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검찰이 수사 대상 기업을 계속 확대할 경우 한나라당의 불법 대선자금의 규모가 적어도 수백억원은 더 늘어날 수도 있다는 게 정치권의 우려 섞인 관측이다.

한편 불법 대선자금과는 무관하게 노 대통령이 대선이 끝난 뒤 당선축하금으로 받은 돈이 드러날 경우 노 대통령은 야당의 탄핵 공격에 직면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명건기자 gun43@donga.com

▼"수사지침 아닌가 대통령 발언 부담"…곤혹스러운 검찰▼

노무현 대통령이 4일 “내 선거자금 중 불법 자금이 한나라당의 10%가 넘으면 대통령직을 사퇴하겠다”고 발언한 데 대해 검찰은 우려하는 분위기다.

대통령이 검찰에 ‘수사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것이라거나 ‘청와대와 검찰간의 교감’ 논란을 불러일으켜 특별검사제 도입의 불씨를 제공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검찰의 부담=검찰은 ‘10%’의 진위를 떠나 노 대통령의 언급이 수사 과정에서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고 있다.

우선 이 수사가 현직 대통령의 진퇴 여부를 결정할 사건으로 비화됐다는 점이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는 것.

또 검찰이 노무현 후보 캠프의 불법 대선자금 규모를 한나라당의 10% 미만으로 밝혀낼 경우 ‘대통령 보호를 위한 수사’를 했다거나 ‘대통령의 말=수사 가이드라인’이었다는 논란을 피할 수 없게 됐다. 그럴 경우 야당측이 공정한 수사를 위한 특검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할 게 뻔해 ‘검찰은 일을 하고서도 욕을 먹는 상황’이 올 수 있다며 우려하고 있다.

이와 함께 대통령의 언급으로 자금 제공자인 기업에 대한 수사가 더욱 어려워질 수 있다는 게 검찰의 시각이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대통령이 (불법 대선자금 규모에 대해) 선을 그으면 정치 보복을 우려하는 기업이 수사에 협조하지 않을 가능성은 더욱 높아진다”고 말했다.

▽노 후보 캠프 대선자금 규모=수사팀 관계자들은 “한나라당이든 민주당이든 기업에서 받은 합법적 대선자금이나 불법 자금의 전체 규모를 아직은 알 수 없는 단계이며 수사가 진행될수록 규모는 더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까지 검찰 수사를 통해 밝혀진 한나라당의 불법 대선자금은 삼성 LG SK 현대차에서 받은 502억원. 그러나 검찰은 이들 기업이 민주당에 제공한 불법 대선자금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뚜렷한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다만 이들 기업이 지난 대선 때 노무현 후보와 국민통합21의 정몽준 후보의 단일화 이후 민주당에 직접 또는 노 후보 캠프를 거쳐 낸 후원금 중 일정 부분을 불법 대선자금의 범주에 포함시킬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수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실제로 검찰은 SK가 대선 전 임직원 명의로 열린우리당 이상수(李相洙) 의원에게 제공한 10억원이 불법 대선자금이라는 판단을 내렸다. 이럴 경우 삼성이 노 대통령의 측근인 안희정씨를 통해 임직원 명의로 민주당에 낸 3억원도 불법 자금의 범위로 포함될 수 있다. 또 안희정씨가 지난해 대선 전 받았다는 출처불명의 5억9000만원과 썬앤문그룹에서 받은 1억원도 불법 대선자금 범주에 포함될 것으로 보인다. 우리당 정대철(鄭大哲) 의원이 굿모닝시티에서 받은 2억원과 검찰이 압수수색을 벌인 서해종건이 제공한 돈도 불법 대선자금일 가능성이 높다. 여기에다 민주당 제주지부 후원회를 통해 모금한 돈 중 회계처리 누락 의혹을 받고 있는 금액이 불법 자금으로 드러날 경우 노 후보 캠프의 불법 대선자금 규모는 훨씬 늘어날 수 있다.

정위용기자 viyonz@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