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포럼]김병익/우리의 GPI<진정한 진보지표>는 얼마인가?

  • 입력 2003년 12월 14일 18시 32분


코멘트
우리 경제를 비록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에 빠뜨리긴 했지만 김영삼 대통령이 환율 방어를 시도했던 것이 우리의 국민소득 1만달러 수준을 지탱하기 위해서였음은 잘 알려진 이야기다. 5년 만에 가까스로 우리 경제가 다시 이전의 소득 수준을 회복하자 노무현 대통령은 2만달러 시대를 열겠다고 약속했다. 국민소득 100달러도 안 되던 시절의 한없는 궁상을 돌이켜보면, 40년 동안 우리나라가 얼마나 급속하게 성장해 왔는가는 바로 100배로 늘어난 이 국민총생산(GNP) 혹은 국내총생산(GDP)의 수치가 보여준다. 실제로 우리의 경제 정책이나 국정 운영의 목표가 이 수치의 증가로 집중되고 있다. 그러나 과연 그 수치의 많고 적음이 반드시 성장을 의미하고 행복의 지표가 되는 것인가.

▼GNP-GDP엔 화폐활동만 담겨 ▼

‘세계화 국제포럼(IFG)’이 작년에 낸 보고서 ‘더 나은 세계는 가능하다’(이주명 옮김·필맥)는 현재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국민소득의 계산 방법이 감추고 있는 엄청난 허구를 지적한다. 경제학자들은 이미 다 알고 있겠지만, 그것은 ‘덧셈만 하고 뺄셈은 못하는 계산기’에 불과한 것이다. 생산은 자연과 자원의 소모를 통해 이루어지는 것인데 그 마이너스 요인은 전혀 계산되지 않는 것이 그 뚜렷한 예다. 가령 숲을 개간해 나무를 자르고 건물을 세운다고 했을 때 그 대지와 건축 공사비는 국민소득에 플러스가 되지만, 그 때문에 잘려나간 나무들의 값어치와 그 숲의 갖가지 경제적 사회적 정신적 혜택을 상실한다는 점은 반영되지 않는다.

또 GNP나 80년대 중반 이후 채택된 GDP는 시장에 반영된 것만 계산하기 때문에 화폐 거래 이외의 경제와 생산활동은 산입되지 않는다. 그러니까 주부들의 가사노동이나 자녀양육의 대가는 이 수치에서 제외되고, 시장에서 산 채소는 국민소득을 올리지만 텃밭에서 기른 야채는 GDP에 기여하지 않는다. 물물거래나 지하경제는 시장교환경제에 직접 투입되지 않기 때문에 이 계산에 반영되지 않고 자원봉사도 물론 들어가지 않는다. 그래서 선진국에 비해 시장교환 체계가 미숙한 후진국의 GDP는 실제보다 적게 나타나는 잘못이 생긴다.

더욱 모순된 것은 이 GDP에서 범죄 질병 환경파괴 공해 등의 사회적 마이너스 요소들이 계산상으로는 플러스로 작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사회적 개인적 삶의 불행을 의미하는 그것들이 오히려 치안과 교도 비용, 의료비, 생태 복구비, 공해 제거비로 환산돼 GDP를 올려주는 데 기여한다. 이 같은 계산 방식이 빈부격차 문제나 복지, 자연보전의 문제들을 감추고 있음을 지적하면서 ‘진보에 대한 새로운 측정지표’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그 지표가 ‘진정한 진보지표(GPI·Ge-nuine Progress Indicator)’다. 캐나다의 ‘GPI 애틀랜틱’은 이 새로운 지표를 산출하기 위해선 자원봉사와 가사 및 양육, 여가 등의 ‘시간 이용’, 토지 숲 해양 등의 ‘자연자본’, 오염되지 않은 공기 물 등의 ‘환경자질’, 소득분배 자본이동 치안 등의 ‘사회경제성’, 건강 교육 범죄 인권 등의 ‘사회적 자본’ 등 다섯 가지 ‘경제-환경적 구성요소’를 계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샌프란시스코의 ‘진보 재정의’ 재단은 이 새로운 지표 산출법으로 계산했을 수치의 예를 보여준다. 미국의 1999년 1인당 GNP는 4만2000달러로 1950년의 1만7000달러에 비해 2.5배 이상 증가했지만, GPI는 1950년의 6000 수준에서 완만하게 오르다 90년대에는 오히려 내려가 9000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환경 등 ‘행복지표’에도 관심을 ▼

‘GPI 애틀랜틱’의 홈페이지는 GPI의 설정이 “사회적 경제적 환경적 현실이 뒤얽혀 있음에 대한 기본적 이해에 근거한다”고 밝히면서 ‘무엇을 위한 진보인가’를 생각해야 하고 ‘더 적은 것이 때로는 더 좋다’는 사실을 음미하기를 우리에게 권하고 있다. 언론인 김진현씨가 ‘양적으로 앞서기’(先進)보다 ‘질적으로 앞서기’(善進)의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한 것과 같은 맥락을 이 GPI 개념은 함의하고 있다.

우리의 GPI는 과연 얼마나 될까. 우리의 성장 개념과 전략도 이 ‘발전의 재정의’에서 출발해야 할 것이다.

김병익 문학평론가·인하대 초빙교수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