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파병안 확정 이후에도 주둔지역 등을 결정하기 위한 미국과의 실무협상, 국회에서의 파병동의안 통과라는 몇 개의 관문이 남아있지만 1965년 베트남 파병 이후 최대 규모인 이라크 파병문제는 일단 컨베이어벨트에 올려진 셈이다.
9월 초 미국이 전투병 파병을 요청해온 이후 파병 문제를 둘러싸고 국내 여론은 찬반으로 엇갈렸고 정부 내에서도 이른바 ‘자주파’와 ‘동맹파’가 맞서는 등 이견과 혼선이 노출됐다.
특히 이라크 현지에서 발생한 잇단 테러 사태의 여파로 한때 국내의 파병 반대 분위기가 고조되면서 정부는 한미 동맹관계와 국내 여론의 틈바귀에서 곤혹스러운 처지에 빠지기도 했다.
그런 점에서 이번 최종 파병안은 한미관계와 국내 여론이라는 양대 변수를 절충한 산물로 볼 수 있다. 독자적으로 특정지역을 맡기로 한 점이 미국의 기대를 반영한 대목이라면 이라크 재건지원을 주 임무로 삼아 혼성부대를 편성키로 한 것은 국내여론을 감안한 것이었다.
물론 이번 파병안은 미군의 후방 지원 역할을 하는 정도여서 최대 1만명 이상의 전투병 파병을 통해 이라크 현지 치안유지군의 한 축을 맡아줄 것을 희망한 미국의 기대 수준에는 미치지 못하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동맹국인 미국에 최소한의 성의 표시는 했다고 자평하고 있다. 윤영관(尹永寬) 외교부 장관이 17일 “우리 군의 파병 규모는 영국군 다음으로 큰 규모”라고 강조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또 주둔지역 치안유지의 경우 정부는 “이라크군과 경찰이 맡도록 하고 우리 파병부대는 이를 지원하는 역할을 할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지만 사실상 이라크 군경과 합동으로 치안유지를 담당하는 형태가 될 가능성이 높다.
18일부터 진행될 미국과의 실무 협상에서는 한국군 파병부대에 외국군을 편입할 것인지 여부가 최대의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여전히 ‘폴란드형 사단’처럼 한국군이 다국적군을 이끄는 역할을 해주기를 기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이 문제는 파병부대의 주둔지역과 맞물려 향후 파병문제의 새로운 변수가 될 가능성이 적지 않다. 만약 미국측이 3000∼3700명 규모로는 우리가 희망하는 키르쿠크 등 4개 지역 중 어느 곳도 독자적으로 담당하기 힘들다며 난색을 표할 경우 파병계획이 수정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한편 정부는 80년 최규하(崔圭夏) 전 대통령의 중동 방문 이후 우리 외교의 사각지대로 방치돼 온 아랍권과의 외교관계 강화를 위해 이라크를 포함한 아랍권 15개국 주요 지도자의 한국 방문 초청 등 다양한 방안을 강구 중이다.
김정훈기자 jng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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