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이란과 함께 ‘악의 축’으로 지목돼 온 북한은 이제 ‘불량국가’ 리비아마저 미국에 사실상 굴복함으로써 그야말로 ‘외로운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됐다.
▽전기(轉機) 맞는 부시 독트린=미 행정부 내 강경파들은 사담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 체포 이후 이어진 △독일 프랑스 등 반전 국가들의 이라크 국가채무 삭감 동의 △이란의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 수용 △리비아의 WMD 포기에 대해 “미국의 힘을 바탕으로 한 부시 독트린이 위력을 발휘한 것”이라며 자축하고 있다고 미 언론들이 21일 전했다.
특히 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국가지도자의 경우 미국의 오랜 제재로 경제가 피폐해진 데다 후세인의 체포 이후 ‘다음 목표는 나’라는 위기의식을 강하게 느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의 최측근인 리처드 펄 국방정책위원은 “위협 하나만으로도 행동을 이끌어내는 데 충분하다는 게 입증됐다”고 말했다.
이런 자신감은 자연스럽게 북한에 대한 정책에서도 강경파의 영향력 강화로 연결될 전망이다.
부시 대통령이 사실상 북한을 노리고 추진해 온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도 탄력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부시 대통령은 현재 11개국이 참여하고 있는 PSI를 확대해 핵확산금지조약(NPT)과 유사한 국제체제로 만들겠다는 복안을 갖고 있다.
▽이라크 모델이냐, 리비아 모델이냐?=이라크 이란에 이어 리비아마저 미국에 손들고 나선 상황은 북한 지도부엔 더없는 부담을 안겨줄 게 분명하다.
북한으로서는 핵문제 해결에 있어서 이란과 리비아가 채택한 ‘선(善)순환의 해법’을 택하든지, 아니면 전쟁과 정권 몰락으로 이어진 이라크의 ‘악(惡)순환의 전철’을 밟든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한 셈이다.
정부 당국자는 “부시 대통령이 ‘북한도 리비아와 같은 생각을 갖기를 기대한다’고 언급한 것은 북한이 앞으로 이라크나 리비아 모델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 할 상황임을 잘 보여준다”고 말했다.
북한이 어떤 모델을 선택하는지는 향후 6자회담에서 어떤 태도를 보이느냐를 통해 확인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의 선택, 엇갈린 전망들=북한이 6자회담에 적극적으로 호응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북한과 함께 반미의 길을 걸어온 ‘동지’ 국가들이 차례로 손을 들면서 고립이 심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상 유일한 달러박스인 미사일 수출 시장이 하나 둘씩 사라지는 가운데 국제사회의 대북 지원이 점점 줄어드는 현실도 북한 지도부의 선택을 제한하는 효과를 낼 것으로 보인다.
박영호(朴英鎬)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미국의 압박을 통한 후세인 체포와 리비아의 투항을 지켜본 북한은 위축될 수밖에 없다”며 “북한으로서는 시간을 끌면서 핵을 손에 넣으려는 유혹도 갖겠지만 어쩔 수 없이 6자회담을 통한 대화국면에 나설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북한이 반대의 길을 선택해 파국으로 치달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이란과 리비아가 미국에 손을 든 이유가 미국에 대한 대항수단인 핵을 보유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단정하고 오히려 핵 개발에 더욱 집중한다면 다시 한번 한반도의 위기 고조로 이어질 가능성도 없지 않다.
북한은 아직은 후세인 체포 이후 내부 결속 강화에 주력하는 모습이다. 이라크 상황을 TV를 통해 상세히 보도하는 등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지만 북한은 아직은 ‘흔들리지 않고 갈 길을 가겠다’며 선전전에 치중하는 모습이다.
선택은 북한 지도부의 손에 달려 있는 셈이다. 다만 북한 지도부는 이란 이라크 리비아에 대한 국제사회의 향후 대응 방향을 면밀히 검토하려 할 것이다.
우리 정부는 우선 2차 6자회담 개최 및 접근방향에 대한 재검토 작업에 들어갔다. 정부는 그동안 2차 회담에서 합의할 공동문안 작성과 조기 개최에 무게를 실어왔다. 그러나 상황이 변하고 있는 만큼 우선 핵문제 해결의 장을 유지한다는 차원에서 ‘조기 개최’에 무게를 싣고 회담에 임하는 방안을 고려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김영식기자 spear@donga.com
김승련기자 srkim@donga.com
곽민영기자 havef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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