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날 경남 합천군 해인사를 방문한 노무현(盧武鉉) 대통령과 부인 권양숙(權良淑) 여사를 맞은 자리에서였다. 법전 스님은 “이 땅은 갈등과 이해의 충돌 속에서 각자의 목청만 돋우고 있는 현실임을 숨길 수 없다”며 “국민을 묶을 수 있는 모든 이념적 목표들은 대화합을 전제로 하는데 정치인마저 하나의 이기집단으로 자기 목소리만 낸 것이 현재의 모든 불화합의 근원임을 알아야 한다”고 정치권을 질타했다.
법전 스님은 또 “노 대통령이 ‘견화경(見和敬·견해를 같이 한다는 뜻)’과 ‘이화경(利和敬·이익을 함께 한다는 뜻)’이라는 국민 대화합의 근본원칙을 세우고 실천해 국민에게 희망과 용기를 줄 수 있는 능력과 안목을 갖추고 있다는 사실을 믿고 있다”며 우회적으로 화합의 정치를 해줄 것을 주문했다.
이어 법전 스님은 “정부가 국민을 받들면 국민도 정부를 받들게 된다. 정치인들은 국민이 견해를 함께 하면 이익을 함께 할 수 있다는 믿음이 생기도록 해야 한다”면서 “진정한 국민화합의 길을 위해 정치인과 종교인의 지혜를 하나로 모아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법전 스님은 노 대통령에게 ‘국정천심순 관청민자안(國正天心順 官淸民自安·나라가 바르면 천심이 순응하고 관청이 맑으면 백성이 스스로 편안하다)’이라는 글을 선물하기도 했다.
이날 노 대통령의 해인사 방문은 사패산 터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공론조사가 정부와 불교계간의 이견 때문에 사실상 무산돼 불교계의 반발이 거세지자 노 대통령이 직접 조계종 수장인 법전 스님을 만나 매듭을 풀기 위해 이뤄졌다.
법전 스님과의 면담은 문재인(文在寅)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이 조계종측과 막후 접촉을 해 성사됐다는 후문. 노 대통령이 사찰을 찾은 것은 취임 후 이번이 처음으로 청와대는 노 대통령의 해인사 방문 일정을 극비에 부쳐오다 이날 아침에서야 공개했다.
환담에 앞서 법전 스님은 “동짓날은 바깥에서 쇠는 게 좋다는 말이 있는 데 하필 동짓날에 오시게 됐다”고 환대했고 노 대통령은 “보통 삼배를 드리면 복을 받을까 싶은데 나라 법도 법이라고 체면을 갖추라고 해서 큰절을 못 드려서 마음이 오히려 무겁다”고 답했다.
오찬을 하면서 노 대통령은 “고시공부를 할 때 1년반 동안 경남 김해의 장유암이라는 절에 있었다. 원래 채식을 좋아한다”고 말했다. ‘대덕화(大德華)’라는 법명을 갖고 있는 권 여사는 “대통령은 복잡한 생각이 있겠지만 나는 오늘 너무 잘 왔다”고 기뻐했다.
김정훈기자 jng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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