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패산터널 공사]법전 “정치인 자기 목소리만 내서야”

  • 입력 2003년 12월 22일 18시 52분


노무현 대통령(오른쪽)이 22일 경남 합천 해인사의 퇴설당을 방문해 조계종 종정 법전 스님과 합장한 채 인사를 하고 있다. 노 대통령은 이날 법전 스님에게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 북한산 관통도로(사패산터널) 공사에 대한 양해를 구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노무현 대통령(오른쪽)이 22일 경남 합천 해인사의 퇴설당을 방문해 조계종 종정 법전 스님과 합장한 채 인사를 하고 있다. 노 대통령은 이날 법전 스님에게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 북한산 관통도로(사패산터널) 공사에 대한 양해를 구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최근 각계 원로들의 정치권을 향한 ‘쓴소리’가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대한불교조계종 종정 법전(法傳)스님도 22일 정치권을 향해 일갈했다.

이날 경남 합천군 해인사를 방문한 노무현(盧武鉉) 대통령과 부인 권양숙(權良淑) 여사를 맞은 자리에서였다. 법전 스님은 “이 땅은 갈등과 이해의 충돌 속에서 각자의 목청만 돋우고 있는 현실임을 숨길 수 없다”며 “국민을 묶을 수 있는 모든 이념적 목표들은 대화합을 전제로 하는데 정치인마저 하나의 이기집단으로 자기 목소리만 낸 것이 현재의 모든 불화합의 근원임을 알아야 한다”고 정치권을 질타했다.

법전 스님은 또 “노 대통령이 ‘견화경(見和敬·견해를 같이 한다는 뜻)’과 ‘이화경(利和敬·이익을 함께 한다는 뜻)’이라는 국민 대화합의 근본원칙을 세우고 실천해 국민에게 희망과 용기를 줄 수 있는 능력과 안목을 갖추고 있다는 사실을 믿고 있다”며 우회적으로 화합의 정치를 해줄 것을 주문했다.

이어 법전 스님은 “정부가 국민을 받들면 국민도 정부를 받들게 된다. 정치인들은 국민이 견해를 함께 하면 이익을 함께 할 수 있다는 믿음이 생기도록 해야 한다”면서 “진정한 국민화합의 길을 위해 정치인과 종교인의 지혜를 하나로 모아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법전 스님은 노 대통령에게 ‘국정천심순 관청민자안(國正天心順 官淸民自安·나라가 바르면 천심이 순응하고 관청이 맑으면 백성이 스스로 편안하다)’이라는 글을 선물하기도 했다.

이날 노 대통령의 해인사 방문은 사패산 터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공론조사가 정부와 불교계간의 이견 때문에 사실상 무산돼 불교계의 반발이 거세지자 노 대통령이 직접 조계종 수장인 법전 스님을 만나 매듭을 풀기 위해 이뤄졌다.

법전 스님과의 면담은 문재인(文在寅)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이 조계종측과 막후 접촉을 해 성사됐다는 후문. 노 대통령이 사찰을 찾은 것은 취임 후 이번이 처음으로 청와대는 노 대통령의 해인사 방문 일정을 극비에 부쳐오다 이날 아침에서야 공개했다.

환담에 앞서 법전 스님은 “동짓날은 바깥에서 쇠는 게 좋다는 말이 있는 데 하필 동짓날에 오시게 됐다”고 환대했고 노 대통령은 “보통 삼배를 드리면 복을 받을까 싶은데 나라 법도 법이라고 체면을 갖추라고 해서 큰절을 못 드려서 마음이 오히려 무겁다”고 답했다.

오찬을 하면서 노 대통령은 “고시공부를 할 때 1년반 동안 경남 김해의 장유암이라는 절에 있었다. 원래 채식을 좋아한다”고 말했다. ‘대덕화(大德華)’라는 법명을 갖고 있는 권 여사는 “대통령은 복잡한 생각이 있겠지만 나는 오늘 너무 잘 왔다”고 기뻐했다.

김정훈기자 jng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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