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종훈/공무원 무더기 승진시킬 때인가

  • 입력 2003년 12월 26일 18시 19분


행정자치부가 중앙 부처의 일반직 국가공무원 5급과 6급 정원을 1599명 늘리고 6급과 7급 공무원을 대거 승진시키는, 전례가 없는 대규모의 공무원 직급 조정을 추진하고 있어 논란이 일고 있다.

부처별 정책 기획 실무를 책임지는 핵심 인력인 5급 공무원의 수가 너무 적을뿐더러 최근 공무원 퇴직률이 급감하면서 하위직의 승진 적체가 심해져 사기 진작을 위해서라도 직급 상향이 필요하다는 게 행자부의 설명이다.

실제 1999년 10.4%였던 퇴직률이 2000년 7.1%, 2001년 3.2%, 지난해 2.5%로 떨어졌다. 또 고시 출신이 먼저 5급에 임용돼 비고시 출신 하위직의 승진 적체는 더욱 가중될 전망이다.

하지만 행자부의 주장에는 이해하기 힘든 측면이 많다. 6급 공무원을 5급으로 직급만 올려주면 갑자기 실무책임자가 될 수 있다는 말인가. 현재 6급 공무원이 능력이 없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행자부가 내건 대규모 승진의 이유가 논리적 비약이라는 것이다.

또 행자부의 논리를 연장하면 6, 7급 공무원이 5, 6급으로 승진해 일단 인사 적체가 해소되더라도 몇 년 뒤 또 인사 적체가 발생하면 4, 5급 정원을 늘려야 한다는 결론이 나올 수도 있다.

사기 진작 차원에서 하위직의 대폭 승진이 필요하다는 말도 20대 청년 실업자가 사상 최고 수준에 이른 현 경제 상황과 ‘삼팔선’ ‘사오정’이 횡행하는 민간 기업의 사정을 감안하면 국민에겐 ‘배부른 소리’로 들릴 수 있다.

“역시 평생직장을 보장받는 공무원답다. 직장이 없어 거리를 떠도는 실직자들의 고통을 생각한다면 어떻게 그런 어처구니없는 발상을 할 수 있느냐.” ID가 namsb인 한 독자는 본보 26일자 관련 기사에 대해 이같이 지적했다.

행자부의 계획대로 직급조정을 추진하려면 2년에 걸쳐 114억원의 예산이 추가로 든다. 이는 고스란히 국민의 혈세다. 형평성 차원에서 지방직 및 기능직 공무원에 대한 유사한 대책 마련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점까지 고려한다면 추가 예산은 훨씬 늘어날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정부가 내년 총선을 앞두고 공무원 사회의 환심을 사기 위해 무리한 직급 조정을 추진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이와 관련해 고계현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정책실장의 지적은 귀담아들을 만하다.

“직급 조정은 각 부처의 권한과 성격의 명확한 규정, 이에 따른 소요 인원 산정 등을 바탕으로 국민적 합의를 얻어 추진해야 합니다. 다른 목적을 위한 조정은 안 됩니다.”

이종훈 사회1부 기자 taylor5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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