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별 정책 기획 실무를 책임지는 핵심 인력인 5급 공무원의 수가 너무 적을뿐더러 최근 공무원 퇴직률이 급감하면서 하위직의 승진 적체가 심해져 사기 진작을 위해서라도 직급 상향이 필요하다는 게 행자부의 설명이다.
실제 1999년 10.4%였던 퇴직률이 2000년 7.1%, 2001년 3.2%, 지난해 2.5%로 떨어졌다. 또 고시 출신이 먼저 5급에 임용돼 비고시 출신 하위직의 승진 적체는 더욱 가중될 전망이다.
하지만 행자부의 주장에는 이해하기 힘든 측면이 많다. 6급 공무원을 5급으로 직급만 올려주면 갑자기 실무책임자가 될 수 있다는 말인가. 현재 6급 공무원이 능력이 없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행자부가 내건 대규모 승진의 이유가 논리적 비약이라는 것이다.
또 행자부의 논리를 연장하면 6, 7급 공무원이 5, 6급으로 승진해 일단 인사 적체가 해소되더라도 몇 년 뒤 또 인사 적체가 발생하면 4, 5급 정원을 늘려야 한다는 결론이 나올 수도 있다.
사기 진작 차원에서 하위직의 대폭 승진이 필요하다는 말도 20대 청년 실업자가 사상 최고 수준에 이른 현 경제 상황과 ‘삼팔선’ ‘사오정’이 횡행하는 민간 기업의 사정을 감안하면 국민에겐 ‘배부른 소리’로 들릴 수 있다.
“역시 평생직장을 보장받는 공무원답다. 직장이 없어 거리를 떠도는 실직자들의 고통을 생각한다면 어떻게 그런 어처구니없는 발상을 할 수 있느냐.” ID가 namsb인 한 독자는 본보 26일자 관련 기사에 대해 이같이 지적했다.
행자부의 계획대로 직급조정을 추진하려면 2년에 걸쳐 114억원의 예산이 추가로 든다. 이는 고스란히 국민의 혈세다. 형평성 차원에서 지방직 및 기능직 공무원에 대한 유사한 대책 마련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점까지 고려한다면 추가 예산은 훨씬 늘어날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정부가 내년 총선을 앞두고 공무원 사회의 환심을 사기 위해 무리한 직급 조정을 추진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이와 관련해 고계현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정책실장의 지적은 귀담아들을 만하다.
“직급 조정은 각 부처의 권한과 성격의 명확한 규정, 이에 따른 소요 인원 산정 등을 바탕으로 국민적 합의를 얻어 추진해야 합니다. 다른 목적을 위한 조정은 안 됩니다.”
이종훈 사회1부 기자 taylor55@donga.com
구독
구독
구독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