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정부 신뢰 바닥인데 총선만 보이나

  • 입력 2003년 12월 26일 18시 28분


일본 도쿄대 동양학연구정보센터가 아시아 10개국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6∼9월)에 따르면 한국 국민의 대(對)정부 신뢰도가 최하위인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를 신뢰하느냐’는 질문에 한국인 응답자의 21%만이 ‘그렇다’고 대답했다는 것이다. 중국 91%, 말레이시아 88%, 태국 84%, 인도 75%에 비해 현저히 낮은 수치다. 국민별 인식 수준의 차를 감안하더라도 충격적인 결과다.

신뢰는 국가와 사회를 하나로 묶어 주는 끈이다. 그 끈이 느슨해지면 국민통합은 기대하기 어렵다. 분열과 해체를 더 걱정해야 한다. 신뢰는 또한 국가경영의 가장 중요한 인프라다. 정부가 아무리 훌륭한 비전과 정책을 내놓는다고 해도 국민이 믿고 따라주지 않는다면 소용이 없다. 소득 2만달러 시대도, 동북아 중심국가도 모두 공염불에 지나지 않게 된다.

신뢰도가 바닥인 이유는 한마디로 리더십의 부재와 정책의 일관성 결여 때문이다. 대통령이 나라의 중심에 서지 못한 채 줄곧 어느 한쪽을 편드는 듯한 인상을 주고, 주요 국책사업들이 마냥 표류하는데 누가 정부를 믿겠는가. 행정부 수반인 대통령이 걸핏하면 “대통령 못 해 먹겠다”, “대통령직을 걸겠다”고 하는데 어느 국민이 정부를 신뢰할 수 있겠는가.

그런데도 노무현 대통령의 관심은 온통 내년 총선에만 쏠려 있는 듯하다. 사전선거운동으로 의심받을 만한 발언을 거듭해 야당이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유권해석을 의뢰할 정도다. 대통령비서진과 일부 장관에게는 사실상 총선 동원령이 내려졌다. 대통령이 총선에 모든 것을 걸고 있어서야 국정의 불안정성과 정부 불신은 심화될 수밖에 없다.

이번 여론조사 결과 중 고무적인 것은 애국심이다. 응답자의 85%가 ‘한국인인 것이 자랑스럽다’고 답해 중국(83%) 일본(65%)보다 높았다. 그러기에 더 안타깝다. 왜 우리 대통령은 국민의 이런 긍지와 열정을 국가 발전의 핵심 역량으로 승화시키지 못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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