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8월 일본 오사카에서 조인주를 판정으로 꺾고 WBC슈퍼플라이급 챔피언에 오른 그는 올해 6월 동급 5위인 일본의 가와시마 가쓰게를 판정으로 누르고 타이틀 7차 방어에 성공하며 롱런하고 있다.
그는 일본에서 귀화하지 않은 사실을 당당하게 밝히며 활동하는 몇 안 되는 스포츠스타 가운데 하나. 1930년대에 할아버지를 따라 일본으로 건너가 성장한 부친 홍병윤씨는 도쿄에서 가라테 체육관을 운영하며 자녀들에게 “일본인 친구들 앞에서 기죽지 말라”고 가르쳤다. 5남매 중 막내인 홍창수는 이 같은 부친의 영향을 받아 어려서부터 운동을 시작했고 가라테 공인 2단의 실력까지 갖췄다.
복싱에 입문한 것은 18세 때. “덩치가 작아 가라테를 하면서 큰 선수들에게 많이 맞았다. 체급경기인 복싱을 하면 같은 조건에서 싸울 수 있을 것 같았다”는 게 그의 말. 혼자 복싱체육관이 많은 오사카로 간 그는 94년 프로에 데뷔했고 99년엔 동양태평양복싱연맹(OPBF) 슈퍼플라이급 챔피언이 됐다.
활약이 점차 두드러지면서 홍창수는 주위로부터 귀화압력을 받았으나 끝내 굴복하지 않았다. “귀화해야 흥행에서 불이익을 받지 않는다”는 집요한 권유도 뿌리쳤다. 조인주와의 타이틀전에선 일장기 대신 한반도기와 인공기를 들고 링 위에 올랐고 경기가 끝난 뒤 “조선은 하나다”고 외쳐 화제를 모았다. 북한으로부터 ‘노력영웅’ 칭호를 받은 것도 이때였다.
지난해 북한의 일본인 납치문제가 불거지면서 ‘죽이겠다’는 협박 e메일까지 받았던 홍창수. 평소 “국적은 중요하지 않다. 나는 조선인일 뿐이다”고 입버릇처럼 되뇌어온 그는 10월 재일동포인 최인숙씨와 결혼했다.
이원홍기자 bluesk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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