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이십칠일발 AFP=합동] 변영태 한국외무장관은 二十七日 아침 한국 주둔 聯合軍의 여하한 縮減도 이것은 共産陣營의 공격에 대한 ‘유엔’측의 防禦能力을 弱化시키게 될 것이라고 警告하였다.
卞외무장관은 한국으로부터 수개 사단의 兵力을 撤收시키는 데 관한 ‘아이젠하워’ 美대통령의 발표에 言及하여 경악하였음을 표명하였고 ‘한국국민과 한국정부는 한국군 증강이 尙今 完了되지 않고 있기 때문에 각별히 如斯한 撤收는 그것을 歡迎하지 않는다’라고 말한 다음 한국은 ‘유엔’군의 일부 撤收는커녕 오히려 ‘유엔’군 二個 사단을 더 증강시켜주기를 願하고 있다고 말하였다.
卞장관은 이어 공산측의 위협이 漸高하고 있음을 강조하면서 ‘유엔’군은 공산측의 침범이 재연되는 경우 그것을 효과적으로 좌절시킬 수 있도록 모름지기 兵力을 증강하여 항상 萬般 態勢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고 宣言하였다.
<1953년 12월 29일자 동아일보에서>
▼한반도 평화보루냐 세계화 첨병이냐▼
주한미군 철수 문제는 반세기 전이나 지금이나 우리의 최대 이슈의 하나다. 미국의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1953년 12월 26일 ‘평화 풍조’를 위해 주한미군 병력 가운데 2개 사단을 철수한다고 발표했다.
미군 철수가 6·25전쟁을 촉발한 뼈아픈 기억을 가진 한국 정부는 경악했다. 변영태 외무장관은 27일 기자회견에서 오히려 2개 사단의 추가 증강을 요청하며 정면으로 반대하고 나섰던 것이다.
하지만 미국으로선 그해 10월 1일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을 통해 한국의 안보 불안을 덜어줬고 10월 4일 중공군 7개 사단의 철수에도 상응하는 조치를 취할 필요가 있었다. 결국 주한미군 철수는 그런 미국의 의도대로 관철됐다. 1953년 최대 32만5000여명에 이르던 주한미군은 1954년 11월까지 22만3000여명으로 줄었다. 현재는 3만7000여명선. 1953년의 10분의 1 수준이다.
지금 우리 정부의 공식 입장은 여전히 한반도에 미군이 필요하다는 것.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주한미군을 보는 시각은 50년 전과는 사뭇 달라졌다. 미군 주둔이나 철수는 우리의 의지보다는 미국의 세계 전략에 따라 결정되는 것 아니냐는 인식이 확산됐기 때문이다. 이제는 우리도 주한미군을 우리의 동북아 전략 지렛대로 활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는 반면 주한미군은 더 이상 필요 없다는 외침도 나온다. 무엇이 우리가 갈 길인가.
권재현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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