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와 '적들' 갈라 뭘 얻었나 ▼
그렇지만 너무 좋아하진 마세요.
대통령님이라는 말에 비해 ‘노짱’은 친근하고 사랑스럽긴 하지만 어쩐지 의리파 골목대장 같은 협소한 느낌을 주기도 하거든요. 그래서 말인데요, 대통령이 되시기 전까지 저는 노무현 의원보다 ‘노짱’이라는 애칭이 훨씬 좋았습니다. ‘노짱’ 하고 입속으로 불러보면, 친근하고 솔직하며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고 손해날 거 뻔히 알면서도 신념에 따라 직진보행으로 씩씩하게 달려가는, 부패를 모르는 청년의 이미지가 떠오릅니다. 그런 면에서 저는 우리의 대통령님이 대통령이 되기 전까지 노회하게 닳아빠진 국회의원이기보다 ‘노짱’의 이미지를 지켜온 것에 대해 큰 자랑과 사랑을 느껴온 사람 중 하나였습니다.
그러나 대통령님.
대통령에 당선되셨을 때 더 이상 ‘우리들의 노짱’으로 머물러 계실 수 없을 것이라고 저는 생각했습니다. 개인적으로 섭섭할 수도 있겠으나 그렇게 돼야 나라가 복될 거라고 믿었기 때문이지요. 대통령은 수많은 다른 ‘짱’들, 우리들의 ‘짱’은 물론 적들의 ‘짱’까지도 속 깊이 품고가야 하는 자리가 아닐는지요. 그러니 이를테면 말 한마디도 고르고 새겨서 써야 할 터이고 모든 일의 결정과 처리에 있어서도 감정적 대응은 ‘쥐약’으로 알고서 사려 깊고 신중하게 처리해야 되겠지요. 그렇지 않으면 우리 모두 불안하게 될 것이고, 사방팔방 ‘우리’와 ‘적들’의 전선만 생겨날 것이고, 그리되면 너나없이 사는 게 오히려 팍팍해질 테니까요.
폐일언하고, 말씀드리지요.
대통령님은 대통령이 되시고도 계속 ‘우리들의 노짱’의 행복감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노짱’다운 말 한마디에 세상은 갈팡질팡해지기 일쑤였고 ‘노짱’의 ‘짱’다운 패기에 여기저기 소모적인 전선은 늘어갔으며, 이치가 그러하니 살림살이도 잔뜩 어려운 형편에 날이면 날마다 뒤숭숭하고 불안한 게 신명나게 일할 기분이 나지 않더라, 그 말입니다. 대통령님의 충정이야 왜 모르겠습니까마는, 본의와 달리 불안하기 짝이 없었는데 마침내 얽히고설킨 대통령님의 측근비리 문제가 터져 나오는 데 이르렀습니다. 솔직히 ‘우리들의 노짱’이 가진 게 뭐 있습니까. 솔직하고 친근한 성격과 부패에 오염되지 않으리라 믿었던 당당한 도덕성과 원칙을 지켜가려는 젊은 신념이 ‘노짱’의 재산이었습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십분지 일의 부패’가 아니라 ‘십분지 일의 부패에도 단호한 대통령’입니다.
▼크고 넓은 대통령의 길 가야 ▼
새해가 밝았습니다, 대통령님.
부디 최근 도미노 식으로 문제되고 있는 측근비리는 ‘노짱’의 초심으로 돌아가 비겁하지 않게 풀어주시고, 그리고 이제 ‘노짱’의 의자에서 일어나 ‘우리’와 ‘저들’을 함께 품고 가는 큰 ‘대통령’ 의자에 의젓하게 앉으십시오. 덕치(德治)에 대해 공자님도 이르기를 “군자의 덕은 바람, 소인배의 덕은 풀이라, 바람을 맞으면 풀은 반드시 고개를 숙인다” 했습니다. ‘노짱’의 협소한 행복감은 버리시고 크고 넓은 길을 가십시오. 우리는 한사람 한사람이 다 ‘짱’인 놀라운 민족 아닙니까. 새해엔 오직 ‘대통령’의 큰 자리에서 우리 모두가 ‘짱’이 되게 해주십시오, 대통령님.
박범신 작가·명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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