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간 인사교류]조직활력 藥될까 업무혼선 毒될까

  • 입력 2004년 1월 6일 18시 48분


“굉장한 모험이다. 하지만 시대적 요구이기도 하다.”

중앙인사위원회 이성렬(李星烈) 사무처장은 6일 중앙 부처간 국장급 인사교류 및 공개모집 계획을 발표하면서 이같이 말했다.

청와대와 중앙인사위가 국가정책 실무를 책임지는 중앙 부처 국장들의 ‘자리 맞바꾸기’에 나선 것은 전례 없는 다목적 포석이다.

▽병폐 도려내기=정부는 우선 공직사회에 개방과 경쟁의 원리를 도입해 대대적인 변화의 바람을 불러일으키겠다는 뜻을 강하게 나타냈다. 이번에 대상이 된 직위 32개는 중앙 부처 20개 기관의 본부 국장급 직위 202개의 13%에 해당한다. 당초 예상을 뛰어넘는 규모다.

정부는 이번 인사가 유관 부처간 이해와 협력을 증진시켜 국가정책 결정 및 집행 과정의 효율성을 높이는 동시에 부처 이기주의와 핵심 관료의 ‘보직 나눠먹기’ 같은 관료사회의 고질적 병폐를 없애는 시금석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 처장은 이와 관련해 “모든 국가정책이 여러 부처의 협의나 팀워크를 통해 결정되는 시대가 왔다”고 말했다. 이해관계가 상충하는 상대방의 입장에 서면 거시적인 입장에서 국익 차원의 결정을 내릴 수 있을 것이라는 얘기다.

교류 직위 중 지방재정 운영권을 놓고 대립해온 행정자치부 지방재정경제국과 기획예산처 재정개혁국, 자원개발과 대기오염 문제에 대해 상반된 입장을 보여 온 산업자원부 자원정책 분야와 환경부 대기보전 분야, 정보기술(IT) 관할 영역을 놓고 다퉈온 산자부 산업정책국과 정보통신부 정보통신국의 책임자 자리를 맞바꾸는 것도 그런 맥락이다.

▽마피아 제거=정부가 이번 인사교류를 통해 부처를 장악하고 있는 이른바 ‘마피아 라인’을 제거하려 한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청와대는 참여정부가 추진하는 각종 개혁정책을 핵심 관료들이 가로막고 있다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최근 사석에서 한 사회 부처의 핵심라인을 구체적으로 지칭하며 “이들 마피아 세력을 반드시 뿌리뽑아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인사교류 대상에 오른 보건복지부 연금보험국장, 정통부 정보통신정책국장,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국장, 직위공모 대상으로 선정된 교육인적자원부 대학지원국장, 농림부 농업정책국장, 통일부 정보분석국장 등은 모두 핵심 직위다. 교류 대상자를 보내는 부처가 아니라 받은 부처가 최종 선정하도록 한 것도 이 같은 관측을 뒷받침하고 있다.

▽성공은 미지수=정부는 기존 관료문화를 고려할 때 이 정책이 정착되기까지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기획예산처 재경부 해양수산부 등에서는 벌써부터 이 제도를 이해하기 힘들다는 부정적인 반응이 나오고 있다. 정부가 △복귀시 희망 보직 배정 및 우선 승진 △매월 70만∼80만원씩 파견수당 지급 등 인센티브를 제시한 것도 공직사회의 반발 등을 고려한 것이다.

권해수 한성대 행정학과 교수는 “이 제도가 성공하려면 선정과정에서 정치성을 배제해야 하며 업무에 대한 과학적인 평가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종훈기자 taylor55@donga.com

김광현기자 kkh@donga.com

차지완기자 cha@donga.com

▼교환근무 공무원 경험담▼

“입장을 바꿔 일을 해 보니 상대방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벽이 아니라 같은 목표를 위해 함께 뛰는 동지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개발이란 ‘창’과 보전이란 ‘방패’를 들고 서로 상반된 업무를 수행하고 있는 건설교통부와 환경부가 실무 간부급 공무원 2명씩을 맞바꿔 근무시키는 이른바 ‘부처간 교환근무제’를 공직사회에 첫 도입한 지 8개월이 지났다.

지난해 4월 말 환경부에서 잔뼈가 굵은 환경영향평가과 임채완 과장(48)과 폐기물정책과 유제철 사무관(40)은 각각 건교부 입지계획과장과 도시정책과 사무관으로 자리를 옮겼다.

또 건교부 하천계획과 김명국 과장(49)과 경부고속철도건설기획단 건설기획과 김채규 서기관(42)은 같은 날 환경부 산업폐수과와 환경영향평가과로 각각 출근했다.

이들은 “두 부처간에 영원히 간격이 좁혀지지 않을 것 같았는데 지금은 이해와 협조를 통해 조화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된 것이 가장 큰 소득”이라고 한 목소리로 말했다.

김 과장은 “평소 ‘개발이 곧 발전’이란 소신에서 막연히 환경부가 사소한 일을 발목 잡는다고 생각했는데 환경부로 자리를 옮겨 근무해 보니 이런 생각이 편협하고 위험한 것이란 것을 깨닫게 됐다”고 말했다.

임 과장도 “중앙 부처에서 일하다 보면 부처간에 설득하거나 협의하는 데 시간이 너무 많이 들어 짜증스러웠는데 지금은 서로의 처지를 알기 때문에 원만한 합의를 이끌어내는 데 큰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유 사무관은 “환경부에 있을 때보다 환경부 직원들을 더 자주 만나 업무 협조를 구하는 등 대인관계의 폭이 훨씬 넓어졌다”고 말했다.

그러나 좋은 점만 있는 것은 물론 아니다.

이들은 “업무 관련 법령을 처음부터 새로 공부하고 생소한 조직문화에 익숙해져야 하는 등 개인적으로 느끼는 부담은 정말 크다”고 입을 모았다.

또 몇 명의 실무급 공무원을 교환하는 것만으로는 정책의 큰 그림이 바뀌기 어려운 만큼 국장급 이상의 인사교류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특히 이들 중 한 명은 “이번 교환근무는 단순하게 직책을 바꾸는 수준에서 머물렀다”며 “앞으로는 업무를 실질적으로 담당할 수 있도록 사람 위주의 교류가 이뤄져야 한다”고 꼬집었다.

이호갑기자 gd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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