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1904 vs 2004]<5>美-中-日 전문가의 조언

  • 입력 2004년 1월 9일 18시 05분


코멘트
약력△난징(南京)대 국제관계학원 교수△미국 하버드대 옌칭연구소 연구원
약력
△난징(南京)대 국제관계학원 교수
△미국 하버드대 옌칭연구소 연구원
《2004년의 한반도는 100년 전과 마찬가지로 선택의 기로에 놓여 있다. 더욱이 북한 핵이라는 시한폭탄까지 안고 있다. 비상할 것인가, 추락할 것인가. 주변 4강 중 미국 중국 일본의 전문가들에게서 ‘2004 한국책략’을 들어본다.》

▼스인훙(時殷弘) 중국 런민(人民)대 국제관계학원 교수▼

러일전쟁 후 한 세기 동안 세계와 동아시아, 한반도에는 상상하기 어려운 변화들이 스쳐갔다. 그럼에도 바뀌지 않은 것이 있다. 동북아가 세계적으로 가장 중요한 지정학적, 전략적 의의를 지닌 지역이라는 점이다.

특히 한반도는 가장 복잡한 국제이익이 교차하는 곳이다. 이는 100년 전에도 똑같았다. 러시아와 일본이 전쟁을 일으킨 것도 이 때문이었다. 러일전쟁은 제1차 세계대전 발발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 전쟁에서 가장 큰 충격을 받은 것은 한반도였다. 일본 식민지로의 전락에 이어 국토분단의 비극을 겪었다.

100여년전 독립협회 강의를 듣기 위해 독립관으로 몰려드는 사람들. 1896년 설립된 독립협회는 자주독립과 내정개혁을 주창하며 조정과 사회의 대오각성을 호소했다. 2004년, 독립협회만 한 목소리도 찾기 힘들다. -사진제공 푸른역사

오늘날 한국 국내정치는 여전히 국제정치의 심대한 영향을 받고 있다. 국제정치 전문가들이 볼 때 현재 북한 핵문제만큼 우려를 자아내게 하는 것은 없다. 동북아의 평화와 안정에 미치는 전략적 의의 때문이다.

핵 위기가 심화되면서 한국에서는 중대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한국 국민 사이에 반미 정서가 현저히 늘고 있다. 한국 정부는 북한 핵문제에 대해 미국 정부와 심각한 이견을 보이고 있다. 주한미군과 한미군사동맹의 미래도 이에 영향을 받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한국 국민이 북녘 동포에 대해 깊은 동정심을 갖고 선의의 기대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햇볕정책을 통해 북한에 우호적인 접근을 하려 한 전략적 의미도 안다.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통해 한반도의 안정은 물론 최종적으로 평화통일을 이루려는 것도 안다.

동시에 많은 사람들은 한국 정부가 북핵 문제에 대해 지나치게 유연한 태도를 보이는 것을 걱정한다. 한국 국민의 반미정서가 동아시아 국제정치 구조의 기본적 안정에 엄중한 영향을 가져올 것을 걱정한다. 심지어 통일 후의 한반도가 어떤 국제정치적 태도를 보일 것인지도 걱정한다.

이러한 모든 것들은 한반도 문제가 외부에서 볼 때 불확정적이기 때문이다. 한국 내부의 정쟁도 이러한 불확실성을 키우고 있다. 국제이익이 교차하는 세계적 전략지역에 자리 잡은 한국은 오늘날 어찌해야 할까. 해답은 불확실한 것보다는 의심할 수 없이 확실한 것에서부터 찾아야 한다.

북핵 문제는 반드시 평화적으로 해결돼야 한다. 한국의 대외정책은 자주 원칙을 키워나가야 하나, 어느 시기까지는 한미군사동맹이 한국의 안전과 동아시아의 기본적 안정에 여전히 필요하다는 원칙을 견지해야 한다. 북한의 핵무장화에는 결단코 반대해야 하겠지만 동시에 우호적인 대북 접근 노력도 계속돼야 한다.

지정학적으로 한국의 주요한 역할은 대륙과 해양, 동북아와 동남아간의 정치 경제적 교량이 되는 것이다. 동북아 경제무역의 일체화, 동북아 및 동남아 자유무역지대의 형성을 촉진할 수 있는 지위와 능력을 한국은 구비하고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국민의 단결과 정치의 안정이다. 이를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는 한국 국민이 알 것이다.

베이징=황유성특파원 yshwang@donga.com

▼데이비드 스타인버그 조지타운대 교수▼

약력
△한국학
△아시아재단 서울 사무소 소장

러일전쟁은 과거부터 한반도가 동아시아에서 중요한 위치였음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오늘날 우리는 그 전쟁 이후가 주는 교훈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대부분의 미국인들이 모르는 게 있다. 러일전쟁 직후 미국과 일본이 비밀리에 체결한 가쓰라-태프트 조약이다. 이 조약은 일본에는 한국을 좌지우지할 권리를 주고 대신 미국에 필리핀을 통치할 권한을 줬다. 특히 이 조약은 미국이 1882년 한국을 보호하는 데 협력하기로 ‘수호통상조약’을 맺은 이후에 체결된 것이기 때문에 더욱 비난할 만하다.

오늘날 미국인들은 가쓰라-태프트 조약을 별 의미가 없는 옛날의 역사로 치부할 수도 있다. 그러나 사실은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다. 현재 한국에서의 복잡한 반미 감정과 관련해 중요한 교훈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가쓰라-태프트 조약으로 한국과 미국의 수호통상조약은 사실상 끝장났다. 그리고 오늘날 또 하나의 조약이 위험한 상황에 처해 있다. 1953년 맺은 한미 상호방위조약이다. 이 조약이 처한 위험은 100년 전보다 훨씬 더 복잡하다.

미국은 한국의 동맹국이지만 한국의 의견을 수렴하기보다는 이미 결정된 정책을 통보하는 식으로 일처리를 해 왔다. 최근 비무장지대(DMZ)에서 주한 미 2사단을 옮기기로 결정한 것도 그렇다. 이 결정으로 뭐가 얼마나 더 이로워졌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중요한 것은 대북정책과 관련된 문제다. 대북정책을 놓고 양국 사이에는 깊은 감정의 골이 패어 있다. 조지 W 부시 대통령과 김대중 대통령의 첫 회담에서 양국간의 갈등이 처음으로 노출됐다. 이 회담은 양국 관계에 ‘재난’이라 할 만하다.

미국인들은 한국 대중의 반미 감정에 대해 과도하게 흥분하고 있다. 미국의 대북정책은 한국의 반미 감정을 더욱 악화시켰다. 그러나 반미 감정은 한국에서 높아지고 있는 민족주의에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이자 미국의 위압적이며 동시에 거만스러워 보이는 영향력에 대한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그렇지만 한국인들도 양국의 관계가 점차 멀어지고 있는 데 대해 책임이 있다. 이라크 전투병 파병 결정과 같이 한국 정부가 미국의 분노를 누그러뜨리려는 노력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에 대한 한국민의 태도는 대체로 파괴적이다.

이는 청와대 대변인의 말 몇 마디로 해결될 성질의 것이 아니다. 현재의 대통령을 당선시킨 한국의 젊은 세대 사이에서 커지고 있는 미국에 대한 분노가 바로 양국 관계를 악화시키고 있다.

우리는 러일전쟁의 여파로 비극적인 한일병합이 있었고 또 한미조약이 끝장났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100년 전에는 그 책임이 미국에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공동책임이다. 상호협력만이 양국 관계가 악화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양국 관계는 분명 한국과 미국 두 나라에 이익이 될 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전체에도 이익이 된다.

김정안기자 credo@donga.com

▼와카미야 요시부미(若宮啓文) 아사히신문 논설주간▼

약력
△아사히신문 정치부장, 논설위원
△미국 브루킹스연구소 객원연구원

민족의 비극이란 무엇인가. 홀로코스트 같은 특이한 예를 제외한다면 이민족에 의한 지배 내전 분단, 이 세 가지가 아닐까. 한민족은 20세기에 세 종류의 비극을 모두 경험했다. 21세기 한국의 행방은 20세기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에 달려 있다. 지금 한국에 필요한 자세는 ‘반(反)’에서 ‘합(合)’으로의 전환, 그리고 ‘합’의 실현이다.

‘반’이란 무엇인가. 앞에서 언급한 세 가지 비극을 통해 형성된 ‘반일’ ‘반공’ ‘반북’이다. 그러나 2002년 한일월드컵축구대회 공동개최에서 확인된 것처럼 이제 반일은 한국의 에너지원이 될 수 없다. 반공과 반북도 예전과 같은 의미를 갖기는 힘들게 됐다.

‘합’이란 무엇인가. 남북의 통합이 가장 절실한 과제일 것이다. 통일이 언제 갑자기 실현될지 알 수 없는 시대가 됐으나 통일이 되면 한국은 여러 면에서 시련에 직면할 것이다. 그 상황을 슬기롭게 이겨내지 못하면 기다리는 것은 혼란일 뿐이다.

합의 발상을 가져야 하는 또 다른 분야는 일본과의 관계이다. 한국과 일본은 국제무대에서 더 이상 가치관이 비슷한 나라를 찾기 힘들 정도로 유사점이 많다. 더욱이 경제적 군사적으로 도약하는 중국의 대두가 눈에 띈다. 중국에 비하면 한국과 일본은 소수파에 지나지 않는다.

한국과 일본이 각각 고립된 상태로 나간다면 언젠가 동아시아에서 중국의 지배를 허락하는 사태가 올지 모른다. 한일 양국은 미국과 중국의 사이에 끼여 두 나라의 안색을 살피는 처지가 될 수 있다. 유일 초강대국인 미국과 어떤 관계를 유지할 것인지는 어려운 과제다. 현재 한국에서 나타나고 있는 반미 감정은 곤란하지만 힘의 논리를 앞세운 미국을 추종하는 것도 위험하다.

일본과 중국은 남북통일이 되면 한국이 북한의 핵개발 성과를 넘겨받아 핵보유국이 되지 않을까 의심하고 있다. 한국이 통일이 된다면 스스로 핵 포기를 선언하고 일본에 ‘동아시아 비핵지대’의 창설을 압박한다면 좋지 않을까. 이는 일본 내의 핵에 대한 유혹을 봉쇄하고 중국의 핵개발을 억제하는 길이 될 수 있다.

경제적으로는 한일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이 ‘합’의 입구가 되겠지만 최종 목표는 유럽연합(EU)과 같은 공동체를 창설하는 것이 돼야 한다. 과거 EU가 유럽경제공동체(EEC)였던 것처럼 처음엔 ‘아시아경제공동체(AEC)’의 창설을 모색하는 게 좋을 것이다.

일본과 중국간에는 아시아의 주도권 다툼이 더욱 치열해질 것이다. 중요한 것은 완충역으로서 한국의 존재다. 경제발전, 근대화, 민주화의 속도에서 일중 간에는 아직 시차가 크다. 이 점에서도 중간적인 위치인 한국의 존재는 귀중하다.

한국에선 ‘반’이 여전히 번창하고 있다. 여야 간의 정치대립과 지역대립이 아직도 격렬하고 정권이 바뀔 때마다 앞 정권의 권위가 부정되는 현상은 외국을 곤혹스럽게 한다. 우선은 국내에서부터 반에서 합으로 에너지의 방향을 전환해야 한다.

도쿄=박원재특파원 parkwj@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