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이동관/민생에 ‘올인’ 할 때다

  • 입력 2004년 1월 14일 18시 14분


정치 역정을 ‘올인(All-in) 승부’로 일관해 온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은 이번 17대 총선의 중요한 승부처의 하나가 먹고사는 문제가 될 것이라는 점을 정치적 후각(嗅覺)으로 이미 알아챈 듯하다.

“노 대통령의 집권 1년 동안 먹고살기가 나아졌나요?”

사회 전반을 휩쓰는 ‘바꿔 열풍’에 다분히 유행하는 향수 같은 냄새가 묻어 있다면, 이 질문이야말로 동서고금의 어떤 선거도 피해 갈 수 없는 본질적 이슈다.

실제 새해 들어 노 대통령은 총선에 모든 것을 건 듯한 이미지에서 벗어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연두기자회견(14일)에 이어 언론사 경제부장 초청 오찬(15일), 전경련 회장단 초청(19일) 등으로 이어지는 경제 살리기 행보도 이런 맥락이다.

한 청와대 관계자는 “노 대통령이 최근 총선 개입을 암시하는 얘기만 흘러나와도 노발대발한다”고 민감한 분위기를 전했다.

어찌됐든 ‘한국주식회사’의 최고경영자(CEO)가 회사 경영을 제대로 챙기겠다는 데 반대할 사람이 있을 리 만무다. 문제는 아직도 많은 국민에게 노 대통령의 이런 변화의 행보가 전술적 변신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우선 불과 얼마 전인 지난해 말 노 대통령 자신이 공사석에서 한 발언의 ‘추억’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노사모)의 행사에서 한 ‘시민혁명론’, 청와대 관저 식사 모임에서 한 ‘양강(兩强) 구도론’, 여기에 청와대 신년 인사회에서는 “4월까지는 많이 시끄럽고 6월까지도 시끄러울 것이다”고 의미심장한 정국 전망까지 내놓았다.

실제 그의 한 측근은 연말 노 대통령과의 회동에서 “총선에 풀베팅하겠다. 내게 맡겨 달라”는 다짐을 분명히 들었다고 전했다.

그러나 노 대통령의 얼굴이 계속 두 개로 보이는 더 큰 이유는 지난 1년여 동안 노 대통령이 보여 온 행보의 진폭(振幅) 때문이다.

“반미면 어떠냐”에서 “미국이 아니었다면 북한 수용소에 갈 뻔했다”는 말로 상징되는 대미관계의 인식 변화에서부터 노사정책, 재벌정책 등에서 보여준 방향 선회의 궤적(軌跡)은 보통사람들에게는 안정감을 주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이와 관련해 한 대기업 관계자는 “대선자금 수사로 재계를 온통 뒤집어놓고 불안정한 노사관계와 세계 최악의 반(反)기업 정서 때문에 이제 한국에 투자하기 싫다는 기업인들을 붙들고 ‘일자리 만들자’고 호소하는 것이 무슨 설득력이 있겠느냐”고 꼬집었다.

경제학자들의 얘기처럼 경제의 절반을 ‘심리’라고 한다면 노 대통령의 선결과제는 바로 이런 불신감을 지우는 일인 듯하다.

더욱이 과거 우리의 정치 경험에 비추어 국회의원의 수는 ‘좋은 정치’의 필요충분조건도 아니다. 정치 9단인 김영삼(金泳三) 김대중(金大中) 전 대통령이 재직 중 ‘적극적인 총선 개입’으로 성과를 올린 뒤 오히려 정쟁(政爭)의 한복판에 끌려들어가 몰락의 길을 걷기 시작한 것이 단적인 예다.

그런 점에서 노 대통령이 진심을 다해 경제 살리기에 매진한 뒤 “그런데 소수 여당으로는 아무래도 안 되겠네요. 도와 주십시오”라고 한다면 더 큰 호소력을 갖지 않을까.

이동관 정치부장 dk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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