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풍 자금의 진실은=문제된 돈은 95년 지방선거 직전 257억원, 96년 총선 직전 940억원 등 1197억원으로, 당시 안기부 예산 계좌에서 지출돼 신한국당측에 전달됐다는 사실이 2001년 검찰 수사에서 확인됐다. 이에 대한 김기섭(金己燮·구속) 당시 안기부 운영차장의 설명은 “은행이자와 예산 불용액 등을 모아서 자금을 마련했다”는 것. 1심재판에서도 검찰수사 결과를 받아들여 김 전 차장과 96년 당시 당 사무총장이었던 강삼재(姜三載) 의원에게 실형을 선고했다.
그러나 안풍 자금이 김영삼(金泳三) 전 대통령의 92년 대선잔금이라고 ‘폭로’하고 나선 정인봉(鄭寅鳳) 변호사나 홍준표(洪準杓) 의원 등 한나라당 관계자들의 주장은 다르다. 안기부 계좌는 ‘돈세탁’을 위해 거친 것일 뿐이라는 얘기다. 이에 대해 강 의원은 외부와의 접촉을 끊었고, YS는 14일 기자들과 조우했지만 “얘기 안 한다면 절대로 안 한다”며 함구했다.
진실 규명의 열쇠를 쥔 또 다른 당사자인 국정원측은 다소 어정쩡한 입장이지만, 지난해 국회 정보위에서 “안풍 자금이 예산 불용액이나 이자일 수는 있지만 국정원 예산이 전용된 것은 아니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이종찬(李鍾贊) 전 국정원장 등도 “국정원 예산에서 한꺼번에 몇백억원의 돈을 빼낸다는 것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말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국정원의 한 핵심 관계자는 “이자나 예산 불용액은 누적시킬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 액수도 그렇게 크지 않다”고 말했다.
관계자들의 언급을 종합할 때 최소한 문제된 안풍 자금의 ‘전부’가 안기부 예산은 아니라는 추론이 가능하다. 그러나 ‘비(非)안기부 예산’이 포함됐다면 그것이 얼마이며 그 출처가 YS 대선잔금인지 단정할 수 있는가는 별도로 밝혀야 할 부분이다.
윤승모기자 ysmo@donga.com
▼한나라 공론화 배경▼
▽한나라당이 ‘YS 자금’을 적극 공론화하는 배경은=2001년 검찰 수사에서 안풍 자금이 안기부 예산으로 규정됨에 따라 법무부는 강 의원과 김 전 차장, 그리고 강 의원의 ‘고용주’인 한나라당에 대해 국고 횡령자금 940억원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95년 지방선거 지원금 257억원 시효완료로 제외). 법원에서 이 혐의가 그대로 인정될 경우 한나라당은 졸지에 길가에 나앉게 될 상황이다. 한나라당이 정 변호사의 폭로를 계기로 안풍 자금의 성격 규명에 적극 나서는 데는 이 같은 말 못할 속사정이 있다.
이 밖에도 4월 총선을 앞두고 최소한 “국가예산을 도용했다”는 비난을 듣지 않겠다는 정치적 계산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당 일각에서는 “정 변호사와 당 지도부가 위기 모면에 급급해서 국민의 기억에서 잊혀져 가는 과거사를 들춰내 비판을 자초한 측면이 있다”는 비판론도 제기된다.
정연욱기자 jyw11@donga.com
▼강삼재 태도 변화 왜?▼
한나라당 강삼재 의원(사진)이 안풍과 관련해 3년 전에 했던 진술을 번복하고 있어 그 배경이 주목된다.
강 의원은 13일 측근에게 “정인봉 변호사에게 사실관계를 알고 그 내용을 피해 나를 변호해 달라는 의미였지 이를 공개하라는 뜻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이 같은 발언은 정 변호사가 이날 기자회견을 열어 “강 의원이 받은 돈은 김영삼 전 대통령이 직접 준 것”이라고 밝힌 직후 나온 것이어서 사실상 YS의 돈임을 시인한 셈이다.
그러나 3년 전 강 의원은 ‘YS 제공설’을 전면 부인했었다.
2001년 1월 한나라당 김영일(金榮馹) 의원은 “사석에서 강 의원이 ‘검찰에서 조사를 받게 되면 반드시 YS를 끌고 들어가야 하는데 나는 도저히 그 일을 할 수 없다’고 말했다”며 “ 당시 선거자금은 YS의 정치자금이었을 것이며 이 돈을 안기부에서 돈세탁하는 과정에 사건이 불거졌을 것”이라고 처음으로 ‘YS 제공설’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당시 한나라당 부총재인 강 의원은 “사실 무근이며 잘못 전달된 말”이라고 전면 부인하면서 진화에 나섰다.
당 안팎에선 강 의원의 진술 번복에 대해 “재판과 직접 결부되니까 심경의 변화가 생긴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김 의원이 ‘YS 제공설’을 주장했을 때는 본격적인 재판이 진행되지 않았지만 지금은 자신의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재판 결과에 결정적 영향을 주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박민혁기자 mh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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