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부형권/입당시기 당당하게 결정해야

  • 입력 2004년 1월 15일 18시 37분


“나는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자산과 부채를 모두 승계할 것입니다.”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은 2002년 봄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때 당시 대통령인 DJ와의 관계 설정에 대해 이렇게 강조했다. 대부분의 경선 주자들이 측근과 아들 비리 때문에 곤경에 빠진 DJ와의 ‘차별화’에 골몰했지만 노 대통령은 달랐다.

그의 이런 당당한 태도는 호남을 비롯한 민주당 지지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노 대통령은 그 대가도 톡톡히 치렀다. 같은 해 치러진 6·13지방선거와 8·8재·보궐선거에서 노 대통령은 ‘DJ 정권 부패’라는 부채를 고스란히 떠안았고 민주당은 참패했다. 노 대통령은 후보 지위까지 흔들리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한나라당은 대선에서도 “부패한 정권에선 ‘새 정치’가 나올 수 없다”며 노 대통령을 공격했지만 국민은 노 대통령을 선택했다.

그랬던 노 대통령은 14일 연두기자회견에서 열린우리당 입당 시기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열린우리당에 부담이 되지 않겠다는 판단이 설 때 입당 문제를 최종적으로 결정하겠습니다.”

노 대통령의 이런 입장은 평범한 정치인이라면 미덕(美德)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노 대통령은 국정 최고책임자다. 대통령이 정치적 결정을 내리는 데 국익보다 특정 정당의 이익을 우선시해서는 안 된다는 얘기다.

노 대통령은 지난해 9월 29일 ‘배신자’라는 비난을 받아가면서 민주당을 탈당할 때 “나의 당적 문제가 정치 쟁점화되지 않게 하기 위한 것”이라며 “앞으로 주요 국정과제와 경제 민생 문제에 전념할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그렇다면 노 대통령이 택할 길은 둘 중 하나다. 그때의 약속대로 초당적 국정운영에 전념하든지, 아니면 하루라도 빨리 열린우리당에 입당해 실종된 ‘책임정치’를 복원하는 일이다.

노 대통령이 정 결단을 못 내린다면 열린우리당 지도부라도 ‘바보 노무현’이 그랬던 것처럼 이렇게 당당하게 요청해야 하지 않을까. “당신의 자산과 부채를 모두 승계할 테니 어서 입당하세요”라고 말이다.

부형권 정치부 기자 bookum9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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