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부-NSC, 파병案 마찰로 사이 틀어져

  • 입력 2004년 1월 15일 18시 53분


윤영관 장관의 전격 경질 배경에는 외교통상부와 국가안전보장회의(NSC)간의 뿌리 깊은 갈등이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게 지배적 해석이다.

그러나 양측의 갈등은 노무현 정부 출범 초기엔 그리 심각하지 않았다.

외교부의 한 관계자는 “지난해 5월 한미정상회담 때만 해도 NSC측은 외교현안을 모두 외교부에 맡길 정도였다”며 “그러나 한일정상회담(6월)과 한중정상회담(7월)을 거치며 NSC측이 외교문제에 대한 자신감을 갖기 시작하면서부터 차츰 마찰이 빚어지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에 맞춰 외교부 쪽에선 NSC의 독주에 대해 “외교를 모르면서 나선다”는 불만의 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다.

양측의 갈등이 심각해진 결정적 계기는 이라크 추가 파병 문제였다.

지난해 10월 27일 이종석(李鍾奭) NSC 사무차장은 “파병 규모는 2000∼3000명 선이 합리적”이라며 정부가 이달 18일 파병을 결정한 뒤 논란을 거듭하던 대규모 파병설에 쐐기를 박았다.

그러나 윤 장관은 다음날 이에 대해 “파병 규모가 결정된 것도 없고, 관계 부처간에 논의해 본 바도 없다”며 “(2000∼3000명 파병은) NSC 관계자의 개인적인 아이디어로 생각한다”고 말해 정부 내에 이상기류가 있음을 시사했다.

이어 위성락 북미국장이 지난해 11월 “파병 같은 정책을 잘못하면 미국과의 관계에서 엄청난 피해를 볼 수 있다”고 언급한 것이 일부 언론에 파병정책을 비판한 것처럼 보도되자 청와대와 NSC 쪽은 발끈했다.

일각에선 청와대가 위 국장에 대한 인사조치를 거론한다는 소문도 나돌았고 윤 장관 등 외교부 고위관리들이 나서 이를 서둘러 무마했지만 갈등의 골은 계속 깊어갔다.

이 같은 알력은 올해 초 외교부 북미라인의 한 간부가 대통령을 폄훼하고, NSC를 비판한 사실이 확인된 뒤 절정으로 치달았다. 청와대는 이 사건과 국민일보에 게재된 ‘NSC-외교부 갈등’이라는 기사에 대해 강도 높은 조사를 벌였다. 외교부의 자세가 ‘항명’이라는 판단을 하게 된 것이다.

외교부 안팎에서는 갈등의 원인(遠因)을 청와대와 NSC에 포진한 386참모와 ‘자주파’들의 윤 전 장관에 대한 ‘배신감’에서 찾는 시각도 있다. 당초 이들 자주파는 윤 전 장관을 동조세력으로 파악해 각료인선 때도 적극적으로 밀었으나 이후 한미정상회담 등을 계기로 윤 전 장관이 현실적 외교노선을 중시하는 태도를 보이자 불만을 노골적으로 토로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도 “이들 ‘자주파’가 사석에서 ‘윤영관은 안 되겠다’는 얘기를 종종 했다”고 털어놓았다.

김영식기자 spea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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