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의 지혜다.
미국이 자국 철강산업을 보호할수록 경쟁력은 약해지고 나중에는 보호 없이는 철강업계가 자생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 것도 한 예이다.
또 있다. 지역균형발전 정책 속에 한국은 서울공화국이 되었고, 형평지향 정책 속에 소득분배는 악화됐으며, 균등교육을 지향하는 교육평준화 속에 서울 강남학군의 서울대 진학률은 더 증가했다고 좌승희(左承喜) 한국경제연구원장은 개탄했다. 이에 대해 그는 △목표 자체가 잘못 설정됐거나 △수단이 잘못됐거나 △수단과 목표가 옳다 해도 크게 애쓰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요즘 우리 경제의 가장 큰 화두가 일자리 창출이다. 청년실업 문제가 워낙 심각하기 때문일 게다.
일자리 창출은 옳은 방향이다. 그러나 일자리는 시장이 만드는 것이다. 물론 정부도 맘먹으면 일자리를 만들 수 있다. 취로사업을 확대하면 된다. 땅을 팠다가 묻는 일만 반복해도 일자리가 생긴다.
이런 식의 발상이 예절강사와 문화재 설명요원을 늘리는 것으로 나타난다. 또 공기업 채용도 늘려 공공부문에서 8만명을 뽑겠다고 한다. 민간기업이 이공계 출신을 한 명 고용할 때마다 3년간 100만원씩 세금공제해 주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150년쯤 전에도 비슷한 고민이 있었다. 경제를 위해 군대를 확대할 것인가에 대한 논쟁이 프랑스에서 벌어졌다. ‘경기 유지와 일자리를 위해 군대를 키우자’는 주장에 대해 클로드 바스티아라는 경제학자는 저서 ‘보이는 것과 안 보이는 것’에서 이렇게 말했다.
“방위를 위해서 군대를 키우자는 주장은 말이 된다. 그러나 ‘경제를 위해서’라는 이유는 엉뚱하다. 만약 군대를 키워 경제가 산다면 모든 장정을 입대시키는 것이 가장 좋을 것이다.”
이는 집집마다 유리창을 깨뜨리면 유리산업이 번성하고 경기가 회복된다는 말과 같다. 심지어 낮에도 실내에선 커튼으로 햇빛을 가리도록 법으로 강제하면 양초산업이 융성할 수 있다. 모두 바스티아가 든 비유다.
낭비적 인력 배치는 당장의 실업문제를 가릴 수 있다. 반짝경기를 띄운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인적 물적 자원을 낭비함으로써 국가경제를 뿌리부터 좀먹는다. 모든 인력을 무조건 고용토록 한 사회주의 경제에서 비효율은 이미 입증되지 않았는가.
일자리 창출은 기업의 몫이다. 정부는 기업활동이 활기차도록 도와주는 방식이어야 한다. 다른 경로의 일자리 창출은 한계가 있다. 그것이 취로사업이 됐든, 군대 양성이 됐든, 억지고용이 됐든….
꼭 정부가 나서겠다면 성장잠재력 확충을 위한 기반투자여야 한다.
다시 한 번 생각하자. 의도가 좋다고 결과도 좋은 것은 아니다.
허승호 경제부 차장 tige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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