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자리 늘리기 대책]“6% 성장땐 35만개” 총선 희망歌

  • 입력 2004년 2월 8일 18시 52분


정부는 요즘 부쩍 고용과 복지에 초점을 맞춘 정책을 많이 내놓고 있다. 특히 정부가 올해 정책 목표로 내세운 고용 확대와 관련해서는 거의 모든 부처가 총동원돼 전방위 대책을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구체적인 내용을 뜯어보면 중복 과장돼 있거나 재정여건을 감안하지 않은 부분이 자주 눈에 띈다. 총선을 앞둔 미묘한 시점에서 부처간 경쟁까지 가세돼 일선 공무원들조차 사석에서는 “해도 너무 한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외화내빈(外華內貧)형 고용정책=‘경제팀 수장(首長) 부처’인 재정경제부는 지난달 15일 공공부문에서 8만개의 일자리를 만들겠다고 한데 이어 같은 달 28일에는 대통령 업무보고를 통해 총 30만∼35만개의 신규 고용을 창출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공공부문 8만개 안에는 노동부가 실시하는 청소년 직장체험 프로그램 참가자 2만2000명이 포함돼 있다. 이 프로그램은 청소년이 최장 6개월간 기업과 공공기관에서 현장 경험을 쌓을 수 있도록 한 것으로 취업과는 거리가 멀다.

공공부문 일자리에 포함된 해외시장 개척요원과 해외취업 지원 사업도 교육 수준이기 때문에 정상적인 일자리로 보기 어렵다.

산업자원부와 정보통신부가 각각 발표한 11만개와 5만3000개의 일자리 창출 계획도 사실상 새로운 내용이 없다.

두 부처가 밝힌 일자리는 재경부가 내놓은 35만개에 포함돼 있을 뿐 아니라 제조업과 정보기술(IT) 분야는 서로 겹치기까지 한다.

특히 이들 일자리는 규제 혁신을 통해 기업 투자가 활성화되면 경제성장률이 5∼6% 가량 되고 고용 역시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에 따른 것이어서 현실화 가능성을 예상하는 것 자체가 무리다.

지난해에도 한국 경제는 전년 대비 2.9%가량 성장한 것으로 추정되지만 일자리는 오히려 3만개나 줄었다.

새로 직원을 채용한 기업에 대해 한 명당 100만원씩 세금을 깎아주겠다는 재경부의 계획도 비판의 도마에 올라 있다.

직원 한 사람을 고용하는 데 연간 수천만원이 드는데 세금 100만원 감면받겠다고 채용을 늘리겠느냐는 것이다.

일부에서는 직원을 6개월 이상만 고용하면 세액(稅額)공제가 가능한 만큼 단기 임시직 직원만 늘어날 것이라는 추측도 나오고 있다.

이와 관련해 한 경제부처 공무원은 최근 본보 기자에게 “총선이 가까워지면서 정책을 내놓기 전에 ‘일부 정당’에 먼저 알려 조율을 거쳐야 하는 등 공무원이 봐도 선심성 정책이 도를 넘어섰다”고 털어놓았다.

▽전시행정 논란도=기획예산처는 지난달 말 공기업 결원 조사를 하면서 “직원 채용을 앞당길 계획은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불과 일주일 만에 토지공사 등 15개 공기업은 2월 중 직원 1700명을 동시에 채용키로 결정했다. 공기업들이 동시 공채를 실시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정통부는 지난 주 업무보고에서 2007년까지 IT 분야에서 일자리 27만개를 만들어 150만명의 고용을 창출하겠다고 공언했다. 이는 작년 말 실업자 82만5000명의 2배에 가깝다.

보건복지부도 최근 2008년까지 숲 생태나 문화유산 해설 등 노인용 일자리 30만개를 만들겠다고 발표했다.

▽재정여건은 무시=복지 분야에서도 파격적인 정책이 쏟아졌지만 대규모 재정이 뒷받침돼야 해 실현 가능성은 미지수다.

청와대 인구·고령대책태스크포스팀은 지난달 내년부터 신생아 가족에게 출산축하금(20만원)을 지급하고 0∼4세아를 둔 가정에는 보육료로 월 5만∼7만원을 지급하는 방안을 검토키로 했다고 밝혔다.

작년 신생아는 49만5000여명. 따라서 이들에게 모두 20만원씩이 지급되려면 990억원이 필요하다.

또 0∼4세아 보육료로는 1조8780억원(작년 기준 313만명에게 월 5만원 지급)이 투입돼야 한다.

예산처의 한 관계자는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의 올해 예산이 9조6000억원인데 2조원 가까운 돈을 새로 지원하기는 어렵다”며 “청와대나 각 부처들이 재정을 감안하지 않은 채 정책을 내놓고 있다”고 말했다.

자유기업원 권혁철(權赫喆) 법경제실장은 “선심성 정책의 남발을 막고 국민이 정책을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서는 재원(財源) 조달 방법 등을 명기(明記)하는 ‘정책-재원 연계제’라도 도입돼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고기정기자 ko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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