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내일]송문홍/북한식 核해법 '공명정대'하다고?

  • 입력 2004년 2월 10일 18시 47분


“우리는 공명정대한 원칙을 많이 내놨는데 미국이 우리의 원칙을 어떻게 생각하고 어떤 용단을 가지고 나오는가, 여기에 회담 성과가 좌우된다.”

지난주 제13차 남북 장관급회담을 위해 서울에 온 김영성 북측 대표단장은 호텔에 여장을 푼 뒤 이렇게 말했다. 같은 날 북한 조선중앙통신이 25일 2차 6자회담 개최를 보도한 것에 대한 논평이었다. 입심 좋기로 소문난 김 단장은 6자회담이 ‘우리(북한)의 일관된 입장과 성의 있는 노력의 산물’인 만큼 ‘남측의 적극 협조’를 바란다는 말을 잊지 않았다.

공명정대한 원칙? 성의 있는 노력의 산물? 남측의 적극 협조? 북핵 문제를 풀기 위한 6자회담이 쉽지 않은 협상 과정이라는 것은 다 안다. 그런 만큼 김 단장의 발언을 회담에 임하는 한쪽 당사자의 결의 정도로 받아들여도 무방할 것이다. 그러나 필자는 좀 따져보고 싶다.

북한이 말하는 ‘공명정대한 원칙’은 얼개가 이미 나와 있다. 지난해 8월 1차 6자회담에서 제시한 ‘4단계 해법’과 ‘일괄타결’ ‘동시행동’ 등이 그것이다. 북-미간 거래 내용을 단계별로 명시한 이 구도는 당연히 북한에 유리하게 돼 있다. 예컨대 1단계에서 북한은 말로만 핵포기 의사를 밝혀도 미국은 중유 공급을 재개하고 대규모 식량지원을 해야 한다. 북한의 핵시설 해체는 맨 마지막 단계, 즉 불가침조약이 체결되고, 북-미간 외교관계가 수립되고, 경수로가 완공된 뒤의 일이다.

받을 건 다 받고 줄 건 끝까지 안 주고 버티겠다는 속셈 아닌가. 북한식으로 하자면 핵문제의 완전 해결은 부지하세월(不知何歲月)일 게 뻔하다. 북한이 자랑해 온 ‘핵 억지력’과 우라늄 핵개발 프로그램을 어떻게 하겠다는 얘기도 일절 없다. 한마디로 북한식 핵 해법은 ‘공명정대’하지 않다.

지금까지 핵개발을 시도했다가 포기한 나라로는 아르헨티나 브라질 캐나다 이집트 독일 등 20개국 가까이 된다. 벨로루시 카자흐스탄 남아공 우크라이나 등은 한때 보유했던 핵무기를 스스로 포기했다. 리비아도 최근 핵개발 포기 대열에 합류했고, 이란은 강행이냐 포기냐의 갈림길에 서 있다. 이들 중 북한처럼 일방적인 협상조건을 내걸고 버틴 나라는 없었다.

그런 점에서 ‘성의 있는 노력’에 대한 찬사는 북한이 아니라 미국 등 국제사회가 받아야 옳다.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은 엊그제도 북핵 해결을 위한 외교 노력을 강조했다. 한반도를 둘러싼 이해관계가 그만큼 복잡한 탓도 있겠지만 ‘네오콘(신보수 집단) 전성시대’ 하의 미국으로선 이례적인 인내심이다.

문제는 그 인내심의 한계가 어디까지냐는 점이다. 미국은 상대를 끝까지 밀어붙여 최대 이익을 얻어내는 북한의 협상 수법을 훤하게 꿰뚫고 있다. 1994년 제네바 기본합의 체결 때 북한의 이런 수법에 당했다고 생각하는 미국은 그때의 시행착오를 되풀이하지 않을 것이다.

2차 6자회담이 2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그전까지 관계국들 사이에 활발한 물밑 조율작업이 벌어질 것이다. 관건은 역시 북한이다. 북한이 좀 더 합리적인 새 해법을 내놓을 때 대화의 실마리가 풀릴 수 있다. 남측의 협조? 그건 북한의 자세 변화에 달린 문제다.

송문홍 논설위원 songm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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