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현안마다 헛발질▼
‘옛 여당 체질’에 안주해 온 관성 때문에 원내1당으로서의 역할이 한계에 부닥치고 있다. 특히 지도부의 취약한 리더십은 FTA 동의안 처리과정에서 두드러졌다.
최병렬(崔秉烈) 대표가 1일 기자간담회에서 “한-칠레 FTA 동의안을 당론 처리하는 것은 어렵지만 당이 책임지고 통과시킬 것”이라고 장담했음에도 불구하고 9일 본회의에서 당의 지리멸렬한 모습만 보인 것이 단적인 예다.
최 대표 등 당3역은 FTA 처리를 앞두고 소속 의원들에게 원만한 협조를 당부하는 서한을 보냈을 뿐 의원들을 진지하게 설득하는 노력은 보이지 않았다.
한 당직자는 “당 대표의 명령과 지시만 있을 뿐 진행 과정 전체를 체크하는 정교한 정치력은 가동되지 않았다”고 최 대표의 리더십을 비판했다.
이라크 파병안 처리문제에 대해서도 한나라당은 사실상 파병안 찬성을 당론으로 정해놓고도 자칫 논의를 주도할 경우 진보 진영의 반발을 살지 모른다는 우려 때문에 “열린우리당이 먼저 명확한 입장을 보이라”고 어정쩡한 태도를 보였다.
이 같은 좌고우면(左顧右眄)하는 태도는 불법 대선자금 청문회 등의 사안에서 민주당에 끌려가는 듯한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결국 보수를 외치면서도 보수정당다운 역할의 정립도, 설득력 있는 정치력을 갖추지도 못함으로써 과반의석을 가진 거대야당으로서의 제 역할을 못하고 있는 셈이다.
1990년 이뤄진 3당 합당 과정에서 생긴 민정-민주계의 물밑대립이 여전히 남아 있고, 여기에 총선 때마다 응급조치로 외부 수혈된 제3의 진보소장파 세력까지 가세해 빚어내는 이념적 갈등이 정체성의 혼선을 초래한다는 점에서 이는 태생적 한계라는 지적도 사고 있다.
정연욱기자 jyw11@donga.com
▼민주당…‘간판사장-대주주-평사원’ 불협화음▼
지난해 11월 조순형(趙舜衡) 대표 체제 출범 이후 당의 이미지 변신에 주력했으나 ‘탈(脫)호남’에 크게 성공하지 못했다. 특히 원내대표 경선에서부터 삐걱거리기 시작한 당의 ‘대주주’인 호남의원 중심의 비주류와 중도개혁 성향의 현 지도부간의 갈등에 개혁파 의원들의 독자행보까지 가세해 결국 조 대표의 발목을 잡고 있다.
9일 이라크 파병안과 FTA 동의안 처리에서도 조 대표는 의원총회에서 “당리당략이나 일시적 여론보다 국가이익을 최우선으로 판단해 달라”며 협조를 당부했다. 그러나 추미애(秋美愛) 김영환(金榮煥) 의원 등 파병 반대를 주장해온 개혁파들의 강한 주장에 밀려 파병안 반대가 ‘권고적 당론’으로 채택됐다.
당의 핵심관계자는 “결국 호남 중진들이 무대 전면에서 비켜나 있는 가운데 목소리 큰 진보파나 지역 민심에 골몰하는 농촌 출신 의원들에 지도부가 얹혀 있는 이중 구조”라고 당내 사정을 전했다. ‘호남’과 ‘진보’라는 이질적인 세력이 나름대로 깨끗한 이미지의 조 대표를 간판으로 내세워 ‘편의공생’을 하고 있을 뿐이라는 얘기다. 그러다 보니 화급한 국가 현안의 시시비비를 가릴 수 있는 리더십은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10일 원내대책회의에서 파병안에 반대하는 ‘권고적 당론’을 자유투표 쪽으로 돌려보려던 유용태(劉容泰) 원내대표가 반대파 의원들의 저항으로 두 손을 들어버린 것이 바로 민주당의 현주소다. 이 때문에 조속히 선거대책위 체제로 개편해 당 저변의 물갈이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는 주장이 당내에서 고개를 들고 있다.
박성원기자 swpark@donga.com
▼열린우리당…‘따로 따로 투톱’▼
개혁이란 이름으로 당의 권한을 철저히 분산시킨 것이 효율성과 리더십의 위기로 나타나고 있다. 한마디로 ‘권력 분점’의 함정에 빠져있는 셈이다.
‘당정 분리’를 공약으로 내세워 당선된 노무현(盧武鉉) 대통령과 청와대는 당의 결정에 관여할 권한이 없다. 더욱이 노 대통령이 입당한 것도 아닌 상태여서 당이 청와대 결정을 존중해야 할 이유도 없다. 이 때문에 당정회의조차 불가능한 ‘어정쩡한 여당’ 상태가 계속되고 있다. FTA와 이라크 파병안 처리를 놓고도 양측은 변변한 조율조차 하지 못했다.
당내의 권력도 당의장과 원내대표로 이원화돼 있어 사사건건 당론 결정이 제대로 안 되고 있다. 논란이 돼온 이라크 파병안에 대해서도 정동영(鄭東泳) 의장이나 상임중앙위원들은 ‘원안대로의 조속한 처리’를 주장한 반면 김근태(金槿泰) 원내대표나 장영달(張永達) 국방위원장은 그동안 “전투병 비율이 높다”는 이유로 부정적 입장을 보여 왔다. 9일 본회의에서 이라크 파병안 처리가 무산된 주된 요인 중 하나도 바로 열린우리당이 당론 조정에 실패한 것이었다.
당 대표(의장)와 원내대표간의 현안조율을 위한 메커니즘이 가까운 시일 내에 작동될 조짐도 보이지 않는다. 이에 따라 당내에서는 “작은 틈새가 점점 커져 큰 문제가 될지도 모른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당내 세력 분포도 매우 복잡하다. 옛 민주당 한나라당 개혁당 신당연대 등 개혁세력을 표방하면서도 현안에 대한 이념적 스펙트럼이 다른 이질적 분자들이 모여 있어 타협과 조율이 쉽지 않다. 특히 일부 극단론자들의 목소리에 합리적 개혁론자들이 휘둘림으로써 ‘꼬리’가 ‘몸통’을 흔든다는 지적마저 나오고 있다.
윤영찬기자 yyc1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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