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단체들은 ‘10인 10색’ 식으로 자신들의 잣대로 의원들의 정책 활동을 심판하겠다고 나서고 있다. 이에 따라 국가 전체의 이익을 망각한 이익단체들의 무리한 압력과 이에 휘둘리는 의원들을 동시에 비난하는 여론이 높아지고 있다.
▽눈치 보는 의원, 표류하는 국정=9일 FTA 비준이 무산된 이유는 표결 방식 때문. 농촌지역구 출신 의원들은 누가 어떻게 투표했는지 알 수 있도록 전자투표를 하자고 주장한 반면 FTA 비준에 찬성하는 도시 의원들은 투표 결과가 공개되는 것을 꺼려 이에 반대했다.
이런 논란은 농민단체들이 “비준 찬성 의원을 총선 때 응징하겠다”고 엄포를 놓은 데서 비롯된 것. 이날 서울 여의도에서 집회를 연 전국농민연대는 집회 내내 “통과에 찬성하는 의원은 지역구까지 쫓아가서 낙선운동을 펼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라크 추가파병 동의안은 ‘이라크 파병반대 국민행동’ 등 시민단체가 파병 동의 의원에 대해 낙선운동을 벌이겠다고 벼르고 있는 가운데 9일 아예 국회 본회의에 상정조차 되지 않았다.
또 총선환경연대는 4일 “환경단체는 국가 정책에 관여하지 말라”고 말한 열린우리당 강봉균(康奉均) 의원과 새만금 간척사업을 찬성한 민주당 김태식(金台植) 의원, 원자력발전 보고서를 발간하는 등 핵 발전 중심 에너지 정책을 추진한 한나라당 맹형규(孟亨奎) 의원을 낙천대상으로 선정했다.
총선여성연대도 같은 날 호주제 폐지에 적극 반대했다는 이유로 의원 7명을 낙천대상에 포함시켰다.
그러나 이들 정책은 모두 어느 방향이 옳다고 말하기 어려울 정도로 오랫동안 논란이 있었던 민감한 사안들.
야당의 한 국회의원은 “솔직히 표를 얻어야 하는 사람 입장에서 시민단체 목소리를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다”면서 “괜히 시민단체 감정을 상하게 하지 말고 정책과 관련해 튀지 말자는 것이 요즘 의원들 분위기”라고 말했다.
▽전문가 진단=서울대 사회학과 임현진(林玄鎭) 교수는 “정치권이 제 역할을 다하고 의원들이 소신 있게 표결했다면 FTA 비준이 무산되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시민단체가 ‘소수의 목소리’를 너무 강하게 대변하는 것이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강철희(姜哲熙) 교수는 “시민단체의 주장은 그 결과에 대한 책임소재가 불분명하다는 점이 문제”라고 말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사무총장을 지낸 이석연(李石淵) 변호사는 “시민단체의 영향력이 커질수록 균형적인 시각과 책임의식이 요구된다”며 “치우친 사고방식으로 정책을 재단하고 낙선운동을 벌인다면 결과적으로 국정 운영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완배기자 roryrery@donga.com
길진균기자 le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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