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올인'…國政 맡길 사람이 없다

  • 입력 2004년 2월 13일 06시 49분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열린우리당으로부터 총선 출마 압력을 받아온 핵심참모들에게 출마를 권유하는 발언을 한 것이 밝혀짐에 따라 참모들의 총선 출마에 관해 ‘이중 플레이’를 했다는 논란이 일 것으로 보인다.

열린우리당이 이들에게 노골적으로 출마를 권유하는 상황에서 노 대통령이 겉으론 ‘출마는 본인 뜻에 달렸다’고 해놓고 뒷전에선 사실상 출마를 독려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일각에선 노 대통령의 4·15 총선 ‘올인 전략’이 막바지로 치달으면서 청와대와 내각에 충원할 ‘인재풀’이 고갈된 게 아니냐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총선 징발에 따른 빈 자리를 메우는 ‘땜질 인사’조차 적임자를 찾지 못해 후임 임명을 미루는 현상까지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최근 개각과 청와대 개편 과정에서는 과거와 달리 청와대의 삼고초려(三顧草廬)에도 불구하고 고위직을 제안받은 사람들이 이를 고사하는 기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 이는 ‘정부의 권위 실추에 따른 결과’라는 분석이 나돈다.

▽청와대 마지막 ‘총선 올인’=한 핵심관계자는 “열린우리당에서 총선 승리를 위해 경쟁력 있는 장차관 인사와 청와대 참모들에 대한 징발 압력이 드셌을 뿐 아니라 청와대 내부에서도 출마압력이 적잖았다”고 말했다. 게다가 노 대통령까지 나서 은근히 출마를 권유해 이들이 부담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

비록 노 대통령이 정색을 하면서 진지하게 출마 권유를 한 것은 아니라고 해도 대통령의 권유성 발언을 듣는 당사자들은 ‘노심(盧心)’이 무엇인지를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총선에 출마자로 거론된 일부 장관들의 경우 소극적인 반응을 보이다가 사퇴 막바지에 이르러 “내가 나서 장렬히 전사하겠다”고 밝혀 ‘외압’이 있었던 게 아니냐는 추측을 낳기도 했다.

강금실(康錦實) 법무부 장관이 최근 총선 출마 여부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아이고 내 팔자야, 그냥 나간다고 해버릴까요”라고 말한 것도 이 같은 기류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12일 사퇴한 문재인(文在寅)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의 경우 염동연(廉東淵) 전 노 후보 정무특보와 이강철(李康哲) 영입추진단장뿐 아니라 문희상(文喜相) 대통령비서실장, 유인태(柳寅泰) 정무수석비서관에게서도 출마 요청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아직 총선 불출마 뜻을 굽히지 않고 있는 강 장관과 박주현(朴珠賢) 참여혁신수석비서관에 대해서도 여권에선 ‘여성 카드’로 막판까지 미련을 버리지 않고 있다.

▽인선난과 인재풀 고갈 논란=청와대는 이헌재(李憲宰) 경제부총리를 영입하는 과정에서 본인이 고사하는 바람에 설득에 애를 먹었다. 노 대통령이 두 번이나 ‘맡아 달라’고 부탁했고, 정찬용(鄭燦龍) 인사수석비서관과 유 수석비서관까지 나서 수차례 제의를 했다.

김우식(金雨植) 연세대 총장을 ‘모셔오는’ 데도 본인이 고사하는 바람에 적잖은 진통이 있었다는 후문이다. 또 윤영관(尹永寬) 전 외교통상부 장관 후임 인선 때는 청와대 밖에서 사람을 찾다가 여의치 않자 내부로 눈길을 돌렸다고 한다.

청와대 참모의 인물난은 더욱 심한 편이다. 정무수석비서관 후임자는 아직도 찾지 못해 애를 먹고 있고, 외교부 장관으로 자리를 옮긴 반기문(潘基文) 전 외교보좌관 후임도 공석이다. ‘청주 술자리 향응’ 사건으로 사퇴한 양길승(梁吉承) 전 제1부속실장 자리는 7개월째 비어있다. 최근 사표를 낸 양인석(梁仁錫) 사정비서관 자리가 비어 있는 이유의 하나도 후임 선정의 어려움이다.

인재풀에 ‘빨간 불’이 켜짐에 따라 노 대통령은 지난해 2월 새 정부 출범 때 가급적 기용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던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출신들을 대거 요직에 발탁하고 있다.

최영해기자 yhchoi6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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