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대선자금 수사]검찰 ‘삼성 장벽’ 넘을수 있을까

  • 입력 2004년 2월 17일 18시 48분


17일 검찰에 출석할 예정이었던 삼성 구조조정본부 김인주 사장이 갑자기 출석 연기를 통보해 대선자금 수사가 지연되고 있는 가운데 점심식사를 하기 위해 외출하는 송광수 검찰총장의 표정이 굳어 있다. -연합
17일 검찰에 출석할 예정이었던 삼성 구조조정본부 김인주 사장이 갑자기 출석 연기를 통보해 대선자금 수사가 지연되고 있는 가운데 점심식사를 하기 위해 외출하는 송광수 검찰총장의 표정이 굳어 있다. -연합
불법 대선자금 수사와 관련해 17일 검찰에 출석할 예정이었던 삼성구조조정본부 김인주(金仁宙) 사장이 갑자기 출석 연기를 요청한 것은 ‘일단 시간을 벌자’는 삼성측의 전략으로 풀이된다.

노무현 대통령의 ‘기업인 처벌 불원(不願)’ 발언과 검찰의 ‘법대로 처리’ 방침이 교차하는 미묘한 시점인 만큼 상황을 좀 지켜보자는 의도가 담겨 있다는 분석이다.

김 사장은 2002년 대선 당시 삼성 구조조정본부 재무팀장으로 일하면서 그룹의 자금문제를 실무적으로 총괄했던 인물. 삼성이 370억여원의 불법 대선자금을 한나라당에 제공하는 과정에 깊이 관여한 당사자로 지목받고 있다.

검찰은 김 사장을 상대로 삼성이 노무현 후보 캠프에도 돈을 줬는지 수사할 방침이었다. 그러나 그가 출두를 거부하면서 검찰의 기업인 수사 일정에 약간의 차질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기업인 연쇄 소환을 계획 중인 검찰도 나름대로 고민이 많다. 이 고민은 시점과 상황에 따라 ‘강경’과 ‘관용’의 상반된 뉘앙스를 가진 언행으로 나타나고 있다.

특히 삼성에 대해 검찰이 뭔가 머뭇거리는 듯한 태도가 감지되기도 한다. 이 때문에 ‘검찰이 삼성 처리를 놓고 지나치게 몸을 사리는 게 아니냐’는 비판도 나온다.

하지만 검찰은 이를 정면으로 부인한다. 죄질과 수사 협조 여부 등을 종합적으로 감안해 상식에 부합하도록 기업인을 형사처리한다는 당초 원칙에는 변함이 없다고 거듭 밝혔다. 노 대통령의 ‘기업인 처벌 불원’ 발언이 검찰 수사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더더욱 없다고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검찰이 그동안 강조했던 원칙과 죄질로 본다면 삼성이야말로 가장 엄하게 처리돼야 한다는 지적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김 사장의 경우 구속 수사가 불가피하다는 것.

삼성은 한나라당에 불법 자금을 제공한 액수가 370억원 대로 5대 그룹 가운데 가장 큰 데다 검찰이 사채시장에서 단서를 잡은 채권 170억원 등 일부 범죄에 대해서는 철저히 진상을 숨겼기 때문에 자수·자복한 것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물론 삼성의 경우 재계 서열 1위라는 위치 때문에 경제에 미치는 파장이 만만치 않은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뜨거운 감자’인 삼성 문제를 검찰이 어떻게 돌파하느냐가 대선자금 수사의 막바지 고비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태훈기자 jeff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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