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일자리 200만개 창출]정부 또 막연한 '숫자놀음'

  • 입력 2004년 2월 19일 18시 51분


일자리 만들기 경제지도자 회의이헌재 경제부총리(왼쪽)가 19일 청와대에서 열린 일자리 창출 경제지도자 회의에서 박용성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등 참석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이날 정부는 올해부터 5년간 200만개의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계획을 발표했으나 실현가능성에 대해 회의적 반응이 적지 않다.박경모기자
일자리 만들기 경제지도자 회의
이헌재 경제부총리(왼쪽)가 19일 청와대에서 열린 일자리 창출 경제지도자 회의에서 박용성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등 참석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이날 정부는 올해부터 5년간 200만개의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계획을 발표했으나 실현가능성에 대해 회의적 반응이 적지 않다.박경모기자
정부가 올해부터 2008년까지 5년 동안 일자리 200만개를 만들겠다는 내용을 뼈대로 하는 ‘일자리 창출 종합대책’을 내놓았지만 실현 가능성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이 적지 않다.

일자리 창출을 위해 적극 나서겠다는 ‘의지’는 이해하지만 구체적 추진계획이 분명하지 않은데다 한국 경제가 처한 여러 가지 여건을 감안할 때 ‘공허한 측면’이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200만개 일자리 창출’ 가능할까=정부는 “충분히 가능한 목표”라고 말한다. 정부는 그 근거로 1999년부터 2003년까지 5년 동안 일자리가 220만개 늘어난 점을 들고 있다. 실제로 취업자 수가 지난해에는 3만명 줄었지만 2000년에는 87만명이 늘어난 것을 포함해 지난 5년 동안 크게 증가했다.

그러나 2000년 전후의 일자리 증가는 외환위기에 따른 반등의 영향이 컸다. 1998년 한 해 취업자 수는 128만명이나 줄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부의 희망처럼 앞으로도 취업자 수가 ‘쑥쑥’ 늘어날지는 의문이다.

특히 기업들이 최근 인건비 부담을 줄이기 위해 ‘고용감소형 투자’에 주력하면서 제조업 일자리 수가 2001년 이후 계속 감소하는 등 제조업의 일자리 창출 능력은 과거보다 크게 약화됐다. 정부는 주5일 근무제에 따른 서비스업의 성장에 기대를 걸고 있지만 제조업이 무너지는 상황에서 서비스업만의 활황을 바라기는 어렵다는 것이 대체적인 시각.

이와 함께 국내 산업구조가 첨단산업 위주로 고도화되면서 ‘고용 없는 성장’이 현실화되고 있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총선을 앞두고 ‘장밋빛 정책’을 내놓은 것이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또 정부가 ‘200만명’이라는 숫자에 집착해 무리한 ‘부양책’에 매달릴 경우 전체 경제에 더 큰 부담을 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김대중 정부가 일자리를 늘리기 위해 벤처와 부동산 분야에서 부양책을 편 결과 거품이 생겼고 그 거품이 꺼지면서 오늘의 실업사태와 불황이 초래됐다는 지적이다.

연세대 이두원(李斗遠·경제학) 교수는 “50만명을 추가로 고용하기 위해서는 잠재성장률 이상으로 성장하거나 노동시장 구조가 신축적으로 변해야 가능하다”면서 “‘일자리 나누기’를 통한 고용 증대는 단기적으로는 효과가 있을지 모르지만 장기적으로는 노동시장의 경직화를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오문석(吳文碩) LG경제연구원 상무는 “일자리 창출보다는 성장 잠재력을 끌어올릴 수 있는 투자활성화가 더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김대유(金大猷) 재정경제부 경제정책국장은 “주5일 근무제 도입에 따른 추가 고용 유발 효과도 비교적 보수적인 전망을 참조했다”며 “경제 주체가 혁신을 위해 노력하고 중소기업의 작업환경을 개선해 청년 및 여성인력을 일정 부분 흡수하면 5년 동안 충분히 200만개의 일자리를 확보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점점 악화되고 있는 고용환경=통계청에 따르면 올 1월 중 취업자 수는 2193만6000명으로 한 달 전보다 16만명, 1년 전보다 37만4000명이 줄었다. 제조업은 작년 같은 달보다 11만명이나 줄었다. 일자리 숫자가 ‘축소’되고 있음을 뚜렷이 보여준다.

이처럼 일자리가 본격적으로 줄어들면서 직장을 다니다 도중에 그만둔 ‘전직(前職) 실업자’도 급증하고 있다. 1월 중 전직 실업자는 76만8000명으로 1년 전보다 13.6% 증가했다. 전직 실업자 중에서도 ‘일거리 감소 및 사업경영 악화’로 직장을 그만뒀다는 실업자가 1년 전에 비해 40%나 증가해 고용시장에 찬바람이 불고 있음을 보여줬다.

경제성장 속도가 점차 떨어지는 것도 일자리 만들기가 쉽지 않을 것임을 예고한다. 국내총생산(GDP) 기준 경제성장률은 1971∼1980년에는 연평균 7.4%에서 1981∼1990년 8.6%로 올라간 후 2001∼2002년에는 4.7%로 떨어졌다. 또 지난해에는 2.9%로 추락한 것으로 추정된다.

GDP 성장률이 1%포인트 높아지면 6만개의 일자리가 창출된다는 전제 하에 일자리를 새로 만들겠다는 정부의 계획은 성장 자체가 불투명한 상황에서는 희망에 그치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송진흡기자 jinhup@donga.com

공종식기자 kong@donga.com

차지완기자 c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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