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왜 다나카 히토시 외무심의관과 야부나카 미토지 아시아대양주 국장을 평양으로 맞아들였을까. 두 사람의 얼굴에 먹칠을 하자는 뜻은 아니었을 것이다. 북한에도 나름대로 외교논리가 있었을 것이다. 문제는 이 나라 외교는 체제 생존을 위한 닌자(忍者)의 술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이번에도 몇 가지 닌자의 술수를 부렸다.
▽선제공격=북한은 납치피해자 5명을 북한으로 돌려보내지 않은 데 대해 ‘배신한 것은 일본’이라며 신랄하게 일본을 공격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분노를 폭발시킨 것 같았다. 일본인 납치 피해자들이 가족 8명의 일본행을 전제로 방북한다는 이른바 ‘평양 마중 방안’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었다. 사망 또는 북한에 온 적이 없다고 밝힌 일본인 10명에 대한 진상 규명에 대해서도 ‘해결 완료’라는 한마디뿐이었다. 협상 마지막 날 등장한 강석주 외무성 제1부상이 자리에 앉자마자 던진 말은 “제재 법안을 통과시켜 놓고 왔군요” 하는 것이었다. 방북 이틀 전 통과된 외환외국무역법 개정안은 일본이 독자적으로 대북 경제제재를 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었다.
▽위협=6자회담에서 일본이 납치문제를 또 제기하면 회담에 참가하지 못하게 만들겠다고 북한은 위협한다. 한국 중국 러시아 등도 ‘납치 문제로 6자회담이 엉망이 되는 것은 곤란하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북한은 판단하고 있다. 6자회담이 잘 이뤄지지 않으면 이는 납치문제를 들어 고자세 요구를 해온 일본의 책임이라고 둘러대면 그만이다.
▽어물어물=북한은 납치문제에 관심을 돌리는 것으로 핵 문제를 어물어물 넘기려 한다. 일본의 여론을 납치문제 일색으로 돌려놓은 다음, 납치문제에 관해 유연한 태도를 가끔 보여 일본이 박자를 맞추기 어렵도록 만든다. 일본 여론이 ‘핵보다는 납치’로 기우는 점을 이용하면서 핵문제에 관한 미일간 협조관계를 흔들어 놓는다. 그런가 하면 일변해서 외환법 개정을 공격 대상으로 삼고 납치문제 진전에 급브레이크를 걸어온다.
▽생색=이번에 북한이 일본의 정부간 협의 요구에 응한 것은 전에 중국의 왕이 외교부 부부장이 방북해 북-일간 납치문제 협의를 재촉한 것과 관련 있을 것이다. 북한은 중국이 말하는 대로 하지는 않는다. 말로만 ‘예, 말씀하신 대로 하지요’ 할 뿐이다. 생색내기라고 해도 좋다. ‘그렇지만 이쪽 얘기도 들어 주시죠’라며 중국에 못을 박는 것도 잊지 않는다.
북한의 닌자식 수법이 갖는 한계는 명확해 보인다. 한때 상대를 현혹시킬 수는 있어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전술적 득점에 지나지 않는다. 북한이 2002년 10월 방북한 미국 대표단에게 우라늄 농축계획의 존재를 인정(현재는 부정)한 것은 자신들이 마치 핵보유국인 것처럼 협박하려는 전술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이는 전략적으로 가당찮은 계산 착오였다.
북한의 최대 약점은 핵을 카드로 삼은 것 말고는 전략이 없다는 것이다. 닌자의 수법으로는 전략이 생기지 않는다.
평양회담은 ‘시나리오 없는 외교’라는 비난을 면할 길이 없다. 하지만 그것은 북한의 강함이 아니라 약함을 속속들이 드러내 보여주었다.
후나바시 요이치 일본 아사히신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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