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정부 1년-달라진 문화계 지형도

  • 입력 2004년 2월 24일 14시 43분


화가이자 문화연대 상임 공동대표인 김정헌 공주사범대 미술교육과 교수가 7년만에 연 개인전 '백년의 기억' 개막식이 열렸던 지난 18일 서울 인사동 인사아트센터. 행사장에는 문화연대, 민족문학작가회의, 환경운동연합 등 재야 단체 관계자들은 물론 오지철(吳志哲) 문화관광부 차관, 김윤수(金允秀) 국립현대미술관장의 모습도 보였다. 오후 4시~7시까지 열렸던 개막식에 들른 사람은 총 500여명으로 개관 이후 최대 인파였다는 것이 화랑 측 전언. 행사에 참여했던 한 미술인은 "김화백의 오프닝은 화가는 물론 시인, 소설가 등 한국민중문화인사들의 총 집합장을 방불케 했다"며 "밤 11시반까지 이어진 뒷풀이도 잔치집 분위기였다"고 전했다.

민중문화 예술 운동을 주도했던 문화 예술인들이 주축이 돼 1999년 결성된 문화연대는 현 정부 들어 주축 멤버들이 각종 문화행정 기관 핵심으로 이동하면서 비판자가 아닌 참여자로 떠 오른 문화 단체다. 이 단체의 좌장격인 김대표의 개인전에 몰린 각계의 관심은 지난 1년간 달라진 문화계의 지형을 보여 준 단적인 사례였다.

노대통령 취임 이후 이뤄진 문화계의 권력 이동은 주요 문화단체 기관장들을 비롯한 간부들이 과거 체제 비판적인 운동권 인사들이 주도하면서 일사분란하게 진행되었다. 권력이동의 중심부로 새롭게 문화계의 핵으로 떠 오른 이들은 '구태 바로잡기다' '새로운 구태다'는 상반된 논란 속에서 핵심 세력으로 부상했다.

▽누가 바뀌었나=지난 새해 벽두 문화 연대 강내희(姜來熙) 집행위원장은 참여정부 문화 정책 세미나에서 "새 정부에서는 예총같은 단체들은 발을 못 붙이게 하고, 민예총같은 진보 개혁들이 대거 전진배치 해 개혁을 주도해 나가야 한다"고 주장해 새 문화 정책의 변화기류를 예고했다. 이는 한달 뒤 문진원 신임원장에 민족문학 작가회의 현기영(玄基榮) 이사장 임명으로 현실화되었다. 현원장의 취임은 예총과 민예총으로 양분돼 온 문화 권력의 정권 교체를 예고하는 상징적 사건으로 받아 들여졌다. 현 원장은 곧 이어 문진원 사무총장에 작가회의 시절 함께 일했던 상임이사 강형철(姜亨喆)씨를 임명했다.

현원장 임명 10여일 뒤인 2월 27일 문화관광부 장관에 이창동(李滄東) 영화감독이 전격 기용되면서 충격을 던졌다. 이 장관은 바로 단행한 내부 인사에 문화연대 등에서 활동한 인사들을 대거 포진했다. 정책 보좌관에 이영진 민족문학작가회의 문화정책위원장, 한국문화관광정책연구원장에 이영욱 문화연대 정책위원회 부위원장, 문화 행정의 새 틀을 개발한다는 취지로 구성한 문화행정혁신위 초기 멤버에 심광현 문화연대 문화개혁 감시센터 소장, 박인배 민예총 기획실장, 이영진 부위원장, 문진원 이사에 박 기획실장과 임정희 문화연대 시민자치문화센터 소장을 각각 발탁한 것.

이어 4월 한국방송공사 사장에 정연주 전 한겨레 논설주간, 5월 한국방송광고공사 사장에김근 전 연합뉴스 사장이 선임되었으며 광고 공사 감사에 남영진 미디어 오늘 사장 겸 편집이 임명되었다. 7월 한국 영상자료원장에는 진보성향의 영화 평론가 이효인씨가 낙점됐다. 이어 9월에는 국립 국악원장에 민족음악인협회 전 이사장 김철호씨가, 국립 현대미술관장에 민중 미술의 맏형격인 김윤수씨까지 내정되자 문화계 일각에서는 행정기관장들에 이어 미술 국악 등 일반 대중과 직접 만나는 현장문화의 노른자위까지 민중 계열 인사들이 거머 쥐었다고 평했다.

문화재청도 예외가 아니어서 4월 문화재 위원회 위원들 중 강내희 문화연대 집행위원장(박물관 분과 위원), 강찬석 문화연대 문화유산위원장(건조물 문화재분과 전문위원) 이영욱 문화연대 부위원장 (문화재 제도분과 위원) 등 문화 연대 관계자들이 대거 진입했다.

가장 최근 인사로는 지난 16일 총리급인 문화중심도시조성위원회 위원장으로 위촉된 송기숙(宋基淑·69) 전남대 명예 교수를 꼽을 수 있는데 송교수 역시 두 차례의 투옥과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 공동의장, 민족문학작가회의 의장, 총선시민연대 공동 대표를 지낸 대표적 재야인사다.

▽코드인사 논란=이처럼 문화 예술 각 분야의 기관 단체장들이 진보진영 인사들로 교체되자 기성 문화계를 주도해 온 인사들 간 갈등과 알력의 골은 깊어갔다. 지난 9월 원로 극작가이자 전 예술원 회장인 차범석씨 등 연극계 중진 소장, 원로 등 연극인 100인은 편파 인사를 성토하는 사상 유례없는 공식 반대 의견을 냈으며 김 국악원장 내정에 대해 '전국대학 국악과 교수포럼' 소속 44개 대학 교수들은 내정 무효를 선언하고 이 문화부 장관의 사퇴를 요구하는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문화계 내 권력이동은 9월 열린 국정감사에서 구체적 수치로 드러나기도 했는데 한나라당 김일윤 의원은 "원장, 사무총장, 이사, 기금지원 심의위원, 분야별 심의위원 자리에 민예총 출신이 그 전 해 9명에서 25명으로 늘어났고 예총 출신은 15명에서 11명으로 줄었다"고 지적했고 같은 당 고흥길 의원도 "민예총, 문화연대, 스크린 쿼터 문화연대 등 특정성향의 단체에 대한 지원은 2002년 3o사업 4000만원에서 2003년에는 14개 사업에 2억2300만원으로 크게 늘었다"고 주장했다.

허문명기자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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