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대통령 취임1년 주류가 바뀐다]<3·끝>문화권력

  • 입력 2004년 2월 24일 18시 50분


문화개혁시민연대(문화연대) 상임 공동대표인 김정헌(金正憲) 공주사범대 미술교육과 교수의 개인전이 열렸던 18일 서울 인사동 인사아트센터.

행사장에는 문화연대 관계자들은 물론 오지철(吳志哲) 문화관광부 차관, 김윤수(金潤洙) 국립현대미술관장의 모습도 보였다. 오후 4시부터 3시간 동안 열린 개막식에 들른 사람은 총 500여명. 인사아트센터 역대 전시회 개막식 중 최대 인파였다.

민중문화예술운동을 주도했던 인물들이 주축이 돼 1999년 결성한 문화연대는 현 정부 들어 ‘비판자’에서 ‘참여자’로 변신하며 문화예술계의 실세로 떠오른 단체. 이 단체의 좌장격인 김 대표의 개인전에 몰린 관심은 달라진 문화계의 지형을 보여 준 단적인 사례다.

▽누가 바뀌었나=대선이 끝난 직후인 2003년 벽두, 문화연대 강내희(姜來熙) 집행위원장은 참여정부 문화정책 세미나에서 “새 정부에서는 예총 같은 단체들은 발을 못 붙이게 하고, 민예총 같은 진보 개혁세력들을 대거 전진 배치해 개혁을 주도해 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문예진흥원 신임원장에 민족문학작가회의 현기영(玄基榮) 이사장이 취임한 것은 문화권력이 민예총으로 ‘중심이동’하는 신호탄이었다. 현 원장은 진흥원 사무총장에 전 민족문학작가회의 상임이사 강형철(姜亨喆)씨를 임명했다.

2월 27일 문화부 장관에 기용된 이창동(李滄東) 영화감독은 취임 직후 문화연대, 작가회의 인사들을 대거 발탁했다. 장관 정책보좌관에 이영진(李榮鎭) 작가회의 소속 시인, 한국문화관광정책연구원장에 이영욱(李英旭) 전 문화연대 정책위원회 부위원장을 임명했다. 또 문화행정의 새 틀을 개발한다는 취지로 구성한 문화행정혁신위 초기 멤버에는 심광현(沈光鉉) 전 문화연대 문화개혁 감시센터 소장, 박인배(朴仁培) 민예총 기획실장, 이영진 보좌관을 배치했다.

▽국악원, 미술관 등 현장문화계도 석권=4월 KBS 사장에 정연주(鄭淵珠) 전 한겨레 논설주간, 5월 한국방송광고공사 사장에 김근(金槿) 전 연합뉴스 사장이 선임됐고 광고공사 감사에는 남영진(南永振) 전 ‘미디어 오늘’ 사장 겸 편집인이 임명됐다. 7월 한국 영상자료원장에는 진보성향의 영화평론가 이효인(李孝仁)씨가 낙점됐다. 이어 9월 국립국악원장에 전 민족음악인협회 이사장 김철호(金鐵浩)씨, 국립현대미술관장에 ‘민중 미술의 맏형’으로 불리는 김윤수씨까지 내정되자 문화계 일각에서는 “행정기관장들에 이어 일반 대중과 직접 만나는 현장문화의 노른자위까지 민중계열 인사들이 장악했다”는 말이 무성했다.

시류와 거리가 멀어 보이는 문화재청도 예외가 아니다. 4월 새로 구성된 문화재위원회에는 강내희 문화연대 집행위원장(박물관분과 위원), 강찬석(姜瓚錫) 문화연대 문화유산위원장(건조물 문화재분과 전문위원), 이영욱 전 문화연대 부위원장(문화재 제도분과 위원) 등 문화연대 관계자들이 대거 위원으로 진입했다.

이달 16일에는 총리급인 ‘문화중심도시조성위원회’ 위원장에 송기숙(宋基淑·69) 전남대 명예교수가 위촉됐다. 송 교수 역시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 공동의장과 총선시민연대 공동대표를 지낸 대표적 재야인사다.

▽코드인사 논란=이처럼 문화예술 각 분야의 기관단체장들이 진보진영 인사들로 교체되자 참여정부 이전까지 문화계를 주도해 온 인사들과의 갈등과 알력의 골이 깊었다. 지난해 9월 원로 극작가이자 전 예술원 회장인 차범석(車凡錫)씨 등 연극인 100인은 편파인사를 성토하는 유례없는 공식 반대의견을 냈다. 또 김철호 국악원장 내정에 대해 ‘전국대학 국악과 교수포럼’ 소속 44개 대학 교수들은 내정 무효를 선언하고 문화부 장관의 사퇴를 요구하는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문화계 내 권력이동은 지난해 9월 국정감사에서 구체적 수치로 드러나기도 했다. 한나라당 김일윤(金一潤) 의원은 “원장, 사무총장, 이사, 기금지원 심의위원, 분야별 심의위원 자리에 민예총 출신이 그전 해 9명에서 25명으로 늘어났고 예총 출신은 15명에서 11명으로 줄었다”고 지적했다. 같은 당 고흥길(高興吉) 의원도 “민예총, 문화연대, 스크린쿼터문화연대 등 특정성향의 단체에 대한 지원이 2002년 3개 사업 4000만원에서 2003년에는 14개 사업 2억2300만원으로 크게 늘었다”고 주장했다.

허문명기자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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