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김형국/‘首都남발’ 국민은 피곤하다

  • 입력 2004년 2월 26일 19시 10분


24일 방송기자클럽 초청 토론회는 노무현 대통령이 국정을 ‘편의성’ 위주로 꾸려가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인상을 남긴 시간이었다. 통일수도로 서울이 적합하다는 국무총리의 국회 발언, 1월 29일의 ‘지방화시대 선포식’에서 “천도는 한 시대 지배세력의 변화를 뜻하는 것”이란 대통령의 발언을 화두로 삼은 질의에 대한 답변이 그랬다.

노 대통령은 행정수도에 대해 ‘보기 나름’이라는 단서를 붙이긴 했지만 국민적 합의를 이미 얻었다고 말했다. 국가를 위해 좋은 일을 하겠다는 취지로 내건 공약으로 당선되었으니 ‘해야 할 일’이라 여겼으며, “여론 수렴 공청회를 여러 차례 가졌지만 그걸 신문 방송이 별로 다루지 않았으니 이는 갈등이 심각하지 않다는 뜻”이라고 해석했고, 관련법이 국회를 통과했으니 더욱 그렇다는 것이 노 대통령의 설명이다.

▼행정수도 국민합의 이뤄졌나 ▼

대통령 당선은 선거법상 과반수(過半數)가 아닌 종다수(從多數)에 따른 것일 뿐인데 당선자의 공약 모두를 국민이 두루 지지했다고 보는 것은 ‘정치 고수’답지 않은 시각이다. 좋아서가 아니라 유력 경합자보다 덜 싫어서 당선자에게 투표했을 수도 있고, 좋아서 투표한 경우에도 당선자의 모든 선거공약을 지지한 끝에 내린 선택이란 근거도 없지 않은가.

언론보도를 인용한 것도 앞뒤가 맞지 않는다. ‘동아 조선 중앙’을 읽지 않는다고 알려질 정도로 보수언론이 싫다고 할 때는 언제고 거기서 중요기사로 다루지 않았음이 별문제 없음을 확인하는 준거로 껴안는 노릇이야말로 바로 편의주의적 태도가 아닌가.

민족이 모두 염원하는 통일시대에 대비한 수도의 미래상에 대해서도 위정자들의 의견이 통일되어 있지 않다. 현 정부식의 표현으로 하면 ‘코드’가 맞지 않고 있다. 국무총리는 통일을 남북한이 말 그대로 하나가 되는 경우로 보고, 그동안 서울 또는 신행정수도와 평양으로 각각 나뉘어 있던 수도들이 마침내 서울로 귀일(歸一)할 것으로 보는 것 같다.

하지만 대통령의 생각은 다르다. 명실상부한 통일을 기약할 수 없는 형국에서 남북한의 평화공존이 유럽연합 같은 국가연합 방식으로 진전될 것이기에 그런 형태에선 신행정수도와 평양은 남북한 지역정부의 수도로 기능하고, 개성 일대가 ‘국가연합’의 수도가 될 만하다고 전망했다.

한반도 장래가 “독일식 통일과는 분명히 다를 것”이라는 대통령의 시각도 어폐가 있다. 독일 통일은 전혀 예측하지 못한 채 평지돌출식으로 이뤄졌다는 것이 다수의 시각이다. 이런 상황은 우리의 경우에도 좋든 싫든 생겨날 가능성이 적어도 절반은 된다고 봐야 마땅하다. 남한을 포함한 관계국들이 북한의 장래를 연착륙 대 경착륙의 두 대극(對極)으로 나누어 대처 시나리오를 궁리해 온 것도 그 때문이 아닌가.

현 정부의 책사(策士)들이 휴전선이 무너지면 북한 주민들이 대거 남한으로, 아니 서울로 쏟아져 들어올 때 예상되는 난국을 대비한다는 데서 수도 이전의 정당성을 찾았던 것도 바로 경착륙을 염두에 둔 발상법이었다.

▼신중하지 못한 통일수도 발언 ▼

아무튼 현 정부 들어서 수도란 말이 남발되고 있다. 행정수도, 통일수도 외에도 부총리급을 위원장으로 하는 조직을 만들어 광주를 ‘문화수도’로 만드는 작업에 착수했는가 하면 부산을 ‘해양·물류 수도’로, 대구를 ‘섬유·디자인 수도’로 만든다는 것이 이 정부의 설명이다. 조직원의 사기진작 방안을 ‘전원 간부화’라고 우기는 데서 찾는 과장법처럼 국토균형발전책도 전국 수도화에서 찾고 있는 셈이다.

노 대통령은 방송기자클럽 토론회에서 무능력한 정부라는 세간의 인식을 무색케 하려는 강박관념에서 행정수도에 매달려 왔고 큰 진전을 보았다고 자평했다. 하지만 위정자의 그런 강박관념은 국민의 피로감만 쌓아갈 뿐임을 좀 헤아렸으면 좋겠다.

김형국 서울대 교수·지역개발학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