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자회담 막전막후]北, 美강경파 입지만 키워줬다

  • 입력 2004년 3월 1일 19시 02분


《중국 베이징(北京)에서 열린 북핵 2차 6자회담의 마지막 24시간은 향후 회담의 풍향계를 좌우할지도 모를 순간들의 연속이었다. 회담은 지난달 28일 오후 5시반경 ‘한반도의 비핵화’를 재확인하는 선에서 끝났다. 성공이라고도, 실패라고도 할 수 없는 결론이었다. 그러나 회담 경과를 주시하던 미국 워싱턴의 대북 강경파와 온건파 사이에서는 치열한 내부 논란이 벌어졌고, 결국 조지 W 부시 대통령까지 직접 나서야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폐막 하루 전 베이징=27일 오후 4시부터 폐막 때 발표할 공동언론성명(Joint Press Statement) 초안을 두고 참가국 수석 및 차석대표들의 논쟁이 계속 이어졌다.

릴레이 논의 끝에 5개국은 서명까지 마쳤다며 미국측에 공동언론성명 초안을 제시했다. 그러나 워싱턴에서 회담 진전 상황을 시시각각 보고받던 강경파 인사들은 초안이 담긴 전문을 보고 강한 불만의 목소리를 터뜨렸다. 미국이 당초 원했던 내용, 즉 6개국은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핵 폐기(CVID)에 동의한다는 대목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같은 시각 워싱턴=하지만 나머지 5개국이 서명까지 한 상황이었다. 미 대표단은 본국에 훈령을 요청했고, 워싱턴의 온건파들은 부시 대통령 직접 설득에 나섰다.

수차례의 설득 끝에 “초안에 서명해도 좋다”는 부시 대통령의 허락을 받아냈다. 미 대표단이 초안에 서명한 것은 28일 0시반경. 6자회담이 핵문제 해결의 유용한 틀이라는 온건파와 6자회담 무용론을 외치던 강경파간의 대립이 끊임없이 이어졌지만 부시 대통령은 온건파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폐막일 오전 10시 베이징=그러나 상황은 다시 급변했다. 북한측이 폐막식 직전인 이날 오전 10시 재개된 실무 회의에서 “7개항 합의문에 ‘의견이 달랐지만’이라는 표현을 넣어야겠다”며 문구 수정을 요구했다. 평양의 새로운 훈령을 받은 게 분명했다.

미국 대표단 내 강경파들은 북한측의 문구 수정 요구를 거부했다. 미 대표단은 이미 이틀 전인 26일 전체회의 때 북한 대표단이 얘기하는 핵 동결이 ‘CVID와 거리가 멀다’는 인상을 받고 있었다고 워싱턴 관계자들은 전했다.

한 관계자의 말. “26일 전체회의에서 러시아측 수석대표인 알렉산드르 로슈코프 외무차관이 북한측에 ‘핵 동결 대상이 뭐냐’고 물었다. 순간 중국 대표단의 표정이 굳어졌다. 북한이 회담장을 박차고 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 미국에도 지나치게 세부적이고 북한을 자극할 수 있는 질문, 발언은 자제해 달라는 요청을 해놨던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북한측은 1994년 제네바합의 때 이미 약속한 핵 시설 동결을 주로 얘기했고, 영변의 5MWe 원자로의 경우에는 아예 동결 의사조차 없는 것 같은 인상을 줬다.”

결국 6개국이 초안이라고 합의했던 공동언론성명서는 관련국들의 서명이 포함되지 않은 의장성명서(Chairman Statement)로 격하됐다.

▽다시 워싱턴=회담 막판에 벌어진 이 같은 갈등은 단순히 미 행정부 내 강온파간의 주도권 다툼을 떠나 6자회담 자체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안. 북한의 ‘돌출 행동’이 고의적인지 아닌지는 확인할 수 없지만 당장 6자 협상을 주도해온 온건파의 입지를 약화시키고, 북한에 대한 불신의 골을 더 깊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당장 강경파 득세를 점칠 수는 없지만, 부시 행정부의 향후 회담 전략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점만은 분명해 보인다.

김정안기자 cred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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