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유재동/서울시의 ‘문화 인식 수준’

  • 입력 2004년 3월 1일 19시 25분


제85주년 3·1절인 1일 서울 서대문구의 독립공원에는 많은 시민이 모여들었다. 순국선열들의 넋을 기리기 위한 발걸음이었다.

그러나 독립공원 한쪽에서 순국선열의 위패를 모시고 있는 독립관은 이날도 여전히 훼손된 채 방치되어 있었다.

독립관 문제와 관련해 서울시의 한 공원녹지 담당자는 “독립관은 순국선열유족회가 알아서 관리하는 곳으로 독립공원의 예산을 쓸 수 없다”며 책임의 화살을 돌렸다.

같은 날 서울시청 앞 일대는 준비 안 된 교통체계 변화로 엄청난 혼란을 겪고 있었다. 잔디광장 조성에 따른 조치였지만 시행시점이 예고 없이 앞당겨지면서 생긴 일이었다.

서울시는 요즘 청계천 복원, 시청 앞 잔디광장 조성, 강북 뉴타운 개발 등 대중의 관심이 큰 대규모 역점사업을 의욕적으로 펼치고 있다.

이날 시청 앞의 교통혼란도 ‘의욕’이 ‘준비’를 지나치게 앞서감에 따라 생긴 일이다.

반면 역사와 뿌리에 관련된 ‘눈에 덜 띄는 사업’은 우선순위에서 밀리는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일고 있다.

청계천 복원공사 과정에서 발견된 크고 작은 유적들은 ‘사업의 귀찮은 걸림돌’로 취급되는 느낌마저 없지 않다. 서울시는 최근 역사유적지인 풍납토성에 ‘문화체험마을’을 조성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하는 해프닝도 있었다.

일각에서는 서울시가 외형적인 것에만 집착하면서 정작 중요한 가치를 놓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한다.

청계천 복원사업도 좋고 시청 앞 잔디광장 조성사업도 좋다. 그러나 우리의 근본과 맞닿아 있는 현충시설이 내팽개쳐져 망가지는데도 서울시의 담당부서가 소관업무가 아니라며 책임을 회피하는 것은 적절치 않아 보인다. ‘눈에 띄는 사업’에만 매달리는 듯한 요즘의 서울시 행정에서 과거 개발독재시대 때 익숙하게 경험하던 ‘전시행정’이 떠오르는 것은 지나친 억측일까?

‘서울의 참모습’이 무엇인지 어지럽기만 한 3월 1일이다. 무엇이 서울을 이처럼 혼란스럽게 만들었을까.

유재동 사회1부기자 jarret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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