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진 선거법 몰랐다간 큰코다친다

  • 입력 2004년 3월 2일 18시 47분


헌정 사상 가장 혁신적이라는 평을 받고 있는 선거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처리될 경우 4·15총선은 이전과는 전혀 판이한 상황에서 진행될 전망이다. 지역구에 출마할 A씨가 선거운동 과정에서 겪게 될 가상 시나리오를 통해 달라진 선거 환경을 미리 알아본다.

3월 29일. A씨는 실무진을 시켜 현금을 수표로 교환했다. 1회 20만원 이상 지출할 경우 현금 대신 수표를 사용해야 하는데 선거전에 돌입하면 100만원 단위의 지출이 많아져 생각지도 않게 현금을 사용할 수밖에 없어 애를 먹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A씨는 현금 확보에 애를 먹었던 4년 전을 생각하면서 쓴웃음을 지었다.

4월 2일. 17일에서 14일로 줄어든 선거운동 기간이 시작되자 운동원 4명과 함께 재래시장을 방문했다. 후보자가 없을 경우 2명, 후보자가 포함될 경우 5명까지 합동 선거운동이 가능하다. 자신의 이름이 새겨진 어깨띠는 규정에 따라 A씨가 맸다. 이날 인근 지하철 역사에서 타당 후보 B씨가 운동원에게도 어깨띠를 착용시켰다가 선관위 직원과 실랑이를 벌인 끝에 결국 벗을 수밖에 없었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이제는 운동원들이 무리를 지어 거리를 행진하거나 출근길 등에서 다수의 유권자에게 인사 또는 연달아 소리를 지르며 선거 운동을 할 수 없게 됐다.

4월 3일. 보좌진과 함께 그동안 후원회를 통해 모금한 정치자금 내역을 점검했다. 특히 평소 알고 지내던 기업 임직원 명의의 후원금이 있는지 알아봤다. C그룹 부사장으로 있는 고교동창생의 후원금 110만원(120만원 이상은 공개 대상)이 들어 있어 “회사 돈이냐 아니냐”며 확인을 해야만 했다. 새 선거법에 따라 기업 임원이 본인 명의로 후원금을 내더라도 기업 돈이 섞여 있으면 불법이기 때문이다.

4월 6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각 유권자 가정으로 9일 발송할 후보자 신상 정보를 재차 확인했다. 이전에는 최근 3년간의 후보자의 세금 내역만 공개했지만 이번부터는 5년간 직계존비속의 납세 실적까지 모두 공개된다. 전화요금 미납도 공개 대상이다.

4월 10일. 선거 운동원들을 대상으로 다시 선거법 교육을 시켰다. 전날 한 운동원이 “주말을 맞아 나들이 가는 유권자들에게 김밥을 돌리자”고 제안했기 때문이다. 며칠 전 타 지역 후보 운동원이 6000원짜리 도시락을 돌리다 이를 받은 유권자 몇 명이 도시락 값의 50배인 30만원을 과태료로 냈다고 보도한 신문을 복사해 돌리고 재차 주의할 것을 당부했다.

4월 14일. 선거를 하루 앞둔 날 저녁 한 인터넷 매체에 타당 후보 지지자가 자신을 비방하는 글을 올렸다는 첩보를 입수했다. 동시에 자신의 선거운동원이 신설된 선관위 규정에 따라 상대 후보자의 운동원 10여명이 길거리에서 유권자를 접촉하는 장면을 휴대전화 카메라로 찍어 선관위 인터넷 홈페이지에 보냈다는 보고를 받았다.

이승헌기자 dd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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