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으로 채무탕감 '모럴해저드' 우려

  • 입력 2004년 3월 3일 01시 34분


빚이 많은 채무자들을 구제하는 ‘개인채무 회생법’이 우여곡절 끝에 2일 국회를 통과했다.

이번에 제정된 개인채무 회생법에 따르면 법원에 회생절차를 신청할 수 있는 사람은 10억원 이하의 담보채무와 5억원 이하의 무담보채무를 가진 채무자 가운데 계속해서 일정 수입을 벌 수 있는 봉급생활자나 자영업자다.

이들이 주소지 관할 지방법원에 회생절차 개시 신청을 한 뒤 2주일 안에 채무변제 계획서를 제출하면 법원은 신청 후 한달 안에 회생절차의 개시 여부를 결정하게 된다.

법원이 회생절차 개시를 결정하면 채무자는 자신의 채무변제 계획서에 따라 최장 8년 동안 빚을 갚아 나가면 된다.

법원이 채무자의 소득에 비해 빚이 너무 많다고 판단하면 빚의 일부를 탕감해준다. 또 변제계획에 따라 빚을 갚는 도중에 갑자기 해고 등의 이유로 채무변제에 차질이 생기면 변경 계획안을 제출할 수도 있다.

법원의 회생절차는 법에 따른 강제력이 있어서 금융회사들이 거부할 수 없다. 신용회복위원회의 개인워크아웃(신용회복)과 다른 점이다.

또 회생절차를 신청할 수 있는 빚은 무담보채무 10억원, 담보채무 5억원을 넘지 않는 범위 안에서 사채(私債) 등 모든 채무가 포함된다.

반면 개인워크아웃은 △총 채무가 3억원 이하이고 △새마을금고 신협 등 협약에 가입하지 않은 금융회사에 진 빚이 전체 채무의 20%를 넘어서는 안 되며 △8년 동안 빚을 모두 갚을 수 있을 만큼 소득이 있어야 하는 등 신청자격이 까다롭다.

이에 따라 9월 중 개인채무 회생법이 시행되면 신용불량자나 신용불량자 문턱에 서 있는 사람 중 상당수가 법의 도움을 받아 회생절차를 밟게 될 것으로 보인다.

또 금융회사들이 법원이 강제적으로 탕감에 나서는 일을 피하기 위해 신용회복위를 통한 개인워크아웃을 적극적으로 실시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금융계에서는 빚을 진 사람들이 법의 힘을 빌려 채무를 탕감받다 보면 도덕적 해이(모럴 해저드)가 확산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적지 않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채무자들이 법원을 통해 빚을 탕감받으면 자신의 능력에 벗어나는 돈을 빌려 쓴 뒤 갚지 않고 버티는 사람들이 많아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에 대해 재정경제부 당국자는 “법적 절차를 이용하는 채무자들은 회생절차를 끝냈다고 해도 금융회사들이 거래를 기피할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며 “법원이 금융회사나 신용회복위를 통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채무자들의 회생절차 신청은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신치영기자 higgle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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