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한 혼란을 보는 시각은 제각각이다. 곪은 것이 결국 터졌다고 생각하기도 하고, 역대 최악의 정치적 부패와 혼란이라는 주장이 제기되는가 하면, 다른 한편에서는 현재의 혼란이 보다 나은 새로운 질서의 확립을 위한 산고(産苦)라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러한 혼란이 지속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권력 핵심에서 계속되는 비리 ▼
노무현 정부가 출범한 이후, 아니 2002년 대통령선거 과정에서부터 국민이 기대했던 것은 변화였다. 1987년의 6월항쟁을 통해 수십년의 군사독재를 청산한 이래 우리 정치는 민주화의 측면에서 괄목할 만한 성과를 보였지만 권력행사의 투명성 및 정경유착이라는 문제에 있어서는 만족스럽지 못한 부분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정치개혁이 지지부진하고, 정치권이 이에 소극적 태도를 보이는 데 대한 국민의 비난은 주로 야당에 집중되고 있다. ‘거꾸로 가는’ 정치개혁에 대한 책임은 일차적으로 국회에서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야당에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거기에다 대선자금 수사에서 밝혀진 한나라당의 불법자금 규모가 예상보다 큰 것에 대한 실망과 분노도 크게 작용하고 있다.
물론 야당에 대한 비판은 대부분 옳다. 하지만 그렇다고 대통령과 정부 또는 여당의 책임은 없는 것일까. 최근에는 워낙 굵직한 사건들이 많다 보니 국민도 웬만한 사건에 대해서는 상당히 둔감해진 것 같기도 하다. 몇백억원대로 드러나는 야당의 불법선거자금 규모에 익숙해진 터라, 대통령 측근이 관여된 몇억원 정도의 비리는 가볍게 느껴지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정상적인 반응일까. 과연 그래도 되는 것일까.
단순히 양의 차이가 질의 차이를 결정하는 것은 아니라는 원론적 주장을 펴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또 양쪽 다 문제가 있다는 양비론으로 문제의 핵심을 흐리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현재의 정치적 혼란상황을 극복해 깨끗한 정치라는 목표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야당에 대한 비판과 개선 요구 이상으로 대통령과 정부의 정직성과 투명성이 더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하는 것이다.
특히 최근 연이어 밝혀지고 있는 대통령 측근들이 연루된 비리 의혹은 많은 문제를 함축하고 있다. 흔히 권력의 크기는 권력의 정점에 있는 대통령으로부터의 거리에 비례한다고 한다. 이 점에서 권력의 핵심에서 비리가 계속되고 있다는 것은 다른 문제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심각성을 내포하는 것이며, 현재 확인된 건수와 액수만으로 가볍게 생각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물론 대통령의 측근비리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라고 할 수 있다. 권력자의 측근 내지 친인척이 막후에서 영향력을 행사했던 예는 동서고금을 통해 무수히 많다. 그렇지 않은 경우가 오히려 드물 것이다. 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그것을 정당하다고 할 수 없다.
▼측근부터 달라지는 모습 보여줘야 ▼
역대 정권에서 항상 있던 일이라는 것도 변명이 될 수 없다. 지난 정권보다는 비리의 양과 질이 덜하다는 이유로 정당화될 수도 없다. 더욱이 노 대통령은 정치개혁을 통한 ‘깨끗한 정치’, ‘신뢰할 수 있는 정부’를 표방함으로써 당선이 불가능해 보였던 대통령선거에서 국민의 지지를 모아 집권할 수 있었다. 그런데 대통령의 측근들부터 깨끗하고 정직하지 않으면 누가 대통령과 정부를 신뢰할 수 있겠는가.
오히려 지금이 기회다. 이제부터라도 대통령과 그 측근부터 달라지는 모습을 솔선해서 국민 앞에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장영수 고려대 교수·헌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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