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무시간에 도박…건설사에 수억대 뜯은 7급 공무원 구속

  • 입력 2004년 3월 4일 20시 19분


공무원들이 억대의 뇌물을 받고 이 돈으로 근무시간에 도박판을 벌이는 등 극도의 기강해이를 보이다 검찰에 적발됐다.

의정부지검 형사5부(부장검사 하홍식·河洪植)는 4일 건설교통부 서울지방국토관리청 산하 의정부 국도유지건설사무소 7급 공사감독관 오모(44), 구모(38), 장모씨(42)와 이들에게 뇌물을 건넨 모 건설업체 대표 정모(47), 권모씨(41) 등 모두 5명을 구속기소했다.

검찰은 또 오씨 등과 어울려 상습적으로 도박판을 벌인 혐의로 경기 남양주시 7급 직원 이모씨(40)를 구속기소하고 이들과 도박을 하거나 뇌물을 준 혐의로 법무사 최모씨(48)와 또 다른 건설업체 이사 박모씨(47) 등 14명을 불구속 기소했다.

▽뇌물로 도박=국도 보수공사를 관리 감독하는 오씨는 2002년부터 2년 동안 국도보수공사와 관련해 건설업체 5곳으로부터 2억9900만원의 뇌물을 받았다. 구씨와 장씨도 각각 1억1400만원과 4800만원을 받았다.

오씨와 구씨는 이 돈을 들고 사무실에서 5분 거리인 한 식당에 모여 일주일에 1, 2회씩 수천만원대의 도박판을 벌였다. 검찰은 “도박 횟수가 너무 많아 이들이 도박을 한 일시를 기억하지 못할 정도였다”고 말했다.

구씨 등은 도박자금이 모자라면 업체에 전화해 도박판에 뒷돈을 대주는 자금원을 지칭하는 속칭 ‘꽁지’ 명의의 통장으로 송금할 것을 지시했다. 남양주시의 이씨는 2년 전 상습도박으로 구속됐지만 벌금형만 선고받자 복직한 뒤 근무시간에 내연의 여자까지 대동하고 다시 도박판에 뛰어들었다.

▽돈세탁 수준은 9단=구씨 등은 현금은 직접 챙겼지만 수표를 받으면 3, 4개의 차명계좌에 넣고 빼기를 거듭하는 수법으로 돈세탁을 해 추적을 어렵게 했다. 검찰이 수사에 들어간 것을 감지하자 업체에 연락해 뇌물 관련 서류가 있으면 즉각 폐기하고 혹시 걸리면 빌려준 것이라 진술할 것을 지시했다. 그러면서도 자신들은 도박을 멈추지 않아 업무시간에 도박 현장에서 검찰에 연행됐다.

▽기업들의 한탄=구씨 등에게 뇌물을 건넸다 적발된 한 업체 대표는 검찰에서 “뇌물공여로 걸렸지만 차라리 잘됐다”며 “처벌을 달게 받겠으며 그동안 온갖 요구에 시달려온 터라 속이 후련하다”고 말했다.

적발된 업체들은 공사비의 최소한 10%를 뇌물로 바쳐야 했다. 이들은 공사를 수주해도 오씨 등이 정하는 업체에 강제로 하도급을 주어야 했고 하도급을 주지 않고 공사를 직접 시행하려면 또 다른 뇌물을 주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원가가 비싼 부품을 사용하도록 설계도를 꾸미거나 줄자를 들고 나타나 재시공을 요구하는 공무원의 횡포에 시달려야 했다. 검찰은 “이런 부패 고리에서 공무원과 결탁해 이득을 취한 업체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업체는 성실히 시공을 하려해도 공무원 때문에 수주한 공사도 직접 하지 못하는 처지였다”고 설명했다. 검찰은 하위직 공무원들의 이러한 기강 해이가 광범위하게 퍼져 있을 것으로 보고 수사를 대대적으로 확대할 방침이다.

의정부=이동영기자 argus@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