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의 한 임원은 10일 국회의 정치자금법 개정안 통과 소식을 듣고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정치권이 ‘돈 안 드는 정치’ 구현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개정 정치자금법에 기업의 후원금 제공 전면 금지를 명문화했지만 이를 바라보는 재계의 눈빛은 의구심으로 가득하다.
검찰의 대선자금 중간수사 결과발표 이후 하루빨리 대선자금 악몽에서 벗어나길 기대하는 재계는 개정 정치자금법 때문에 또다시 부정하고 음성적인 돈줄로 전락하는 악순환에 빠질까봐 우려하고 있다.
대기업 임원의 걱정은 계속됐다.
“정치자금을 주고받는 ‘법인(기업) 시장’이 사라지는 대신 ‘개인 시장’이 들어설 것입니다. 물론 개인은 바로 기업의 임원이죠. 돈에 대한 수요가 엄연히 존재하고 공급자는 기업일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 임원들이 기업을 대신해 편법으로 후원금을 전달하는 진풍경이 생겨날 것입니다.”
정치자금을 변칙으로 주고받는 방법까지 거론되고 있다.
“기업은 임원들에게 정치자금 몫으로 월급을 더 주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임원은 소득세를 일부 내고 남은 돈을 정치권에 건네주게 되겠죠. 다른 암묵적인 지원 방식도 생겨날 것입니다.”(전국경제인연합회 이승철 상무)
그동안 재계는 정치자금 공급자 입장에서 “지키지 못할 법은 오히려 편법을 조장한다”며 대안을 수차례 건의했다.
투명한 정치자금 수수를 위한 선거관리위원회 지정기탁금제 부활, 다수의 기업으로부터 소액을 걷는 방식의 정치자금 양성화 등이다.
그러나 정치권은 이를 반영하지 않았다.
여야가 ‘개혁 선명성’ 경쟁을 위해 이번 개정안을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수용했다는 얘기도 들린다.
현실을 감안하지 않고 법을 개정한 데 따른 사회적 비용은 고스란히 국민과 기업이 떠안을 수밖에 없다는 생각에 그저 답답할 따름이다.
이원재 경제부 차장 wj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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