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이 대통령에게 기대한 것은 사과의 법적 타당성에 대한 설명이 아니다. 탄핵안 발의라는 극한 상황에서 하고 싶은 말이 있더라도 참고, 스스로 나서서 위기의 뇌관을 제거해 달라는 것이었다. 대통령은 이런 기대를 외면하고 정면승부를 택했다.
노 대통령은 야당 책임론을 거론함으로써 상황을 더 악화시켰다. 열린우리당 창당에 대한 민주당의 불만과 대선자금 수사에 대한 한나라당의 반발이 결국 탄핵안 발의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심지어 지난 대선에서 자신이 예상을 깨고 당선된 것이 원죄(原罪)라는 말까지 했다. 떨어질 줄 알았는데 갑자기 당선되다 보니 야당이 지금도 자신을 대통령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고, 그래서 오래전부터 탄핵 얘기가 나오지 않았느냐는 것이다.
이해하기 어려운 현실 인식이다. 노 대통령은 지금도 자신이 반노(反盧) 세력에 포위돼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러나 48.9%의 득표율로 당선된 노 대통령의 취임 초 지지율은 80%대에 달했다. 지지율이 20%대까지 떨어지고 급기야 탄핵안까지 발의된 책임이 과연 누구에게 있는지 자문해 봐야 한다. 언제까지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있을 것인가.
노 대통령은 회견에서 측근과 친인척 비리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솔직히 털어놓고 사과를 했다. 일부 공감이 가는 부분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종 이들을 옹호하는 것처럼 들렸다. 대선자금 10분의 1 발언도 이런저런 이유로 제외되는 돈을 빼면 액수가 크게 줄 것이라고 강변했다. 야당이 “이날 회견으로 오히려 탄핵 사유가 하나 추가됐다”고 흥분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문제를 가라앉히기는커녕 오히려 심화시킨 셈이다.
노 대통령의 현실인식과 위기대처 능력이 이 정도라면 불행히도 탄핵안 표결 외에 다른 길은 없어 보인다. 우리는 본란에서 그런 상황이 와서는 안 된다고 누차 강조했다. 대통령은 사과하고 야당은 탄핵안을 철회해 파국은 막아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이제 누구도 말릴 수 없게 돼 버린 듯하다. 이로 인해 국민은 또 얼마나 비싼 대가를 치러야 할지 답답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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